김유진, 평균율 연습
누구나 아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작곡한 수많은 작품 중에 이런 게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이 작품명이 낯선 사람이라도 제1권 중 프렐류드와 푸가 1번 C장조 BWV 846을 들려주면 아하, 소리를 내뱉을 것이다.
https://youtu.be/iWoI8vmE8bI?si=_mRPqXh1R-aI03ec
평균율이란 대체로 건반악기에 한정하여 쓰이는 조율법을 의미한다. 기술적인 의미 대신 조금 더 '문학적인' 정의를 내리자면 모두가 조금씩 흠결을 떠안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평균율이라는 말이 있다면 상대적인 개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순정률이다. 순정률에 대한 설명은 뒤로 하고, 작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수민은 시간을 쪼개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피아노 조율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80-90년대처럼 가정마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대쯤은 자녀 교육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시대도 아닌 데다 디지털 피아노의 보급률이 높아지니 피아노 조율사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자명할 터. 그럼에도 수민이 피아노 조율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보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요." -55쪽
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수민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많은 부분이 속절없이 고장 난 상태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대상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을 때 무력감을, 혹은 분노를 느낀다. 통제 상실의 대상은 원초적으로는 자신의 신체일 것이고, 원대하게는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청소나 정리정돈은 아주 쉬운 예다. "내가 아직도 이것만큼은 통제할 수 있다"라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공감과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건드린다. 남들이 보기엔 도무지 '전망도 밝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왜'라고 의문을 갖게 할 만한 피아노 조율이라는 일을 수민이 선택하게 된 데는 그만의 내적 논리가 있다.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의 유익은 바로 보이지 않아 쉽게 납득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결정에는 내가 결코 침범할 수도, 함부로 이해할 수도 없는 그만의 내적 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체득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나처럼 문학계에 조금의 친분도 없는 사람조차 늘 말하고 또 거듭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조차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수긍할 수 있는 지점에서부터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바닥을 다질 수 있는 까닭이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내가 가진 이해의 틀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자비한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마음속에 마련해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수민은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해 온 음악들을 떠올렸다. 소나타든 협주곡이든 관현악곡이든 대체로 모든 곡들은 결국 주제부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반복의 핵심은 반복되는 멜로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기나긴 음악적 여정에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 동일한 두 멜로디가 전혀 다른 해석을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수민은 음악의 형식이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156쪽
조율의 근간은 정확한 산술이지만 이 불확실성을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소리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원장은 말했다. -194쪽
문득, 수민은 자신이 이런 순간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의 과정에 존재하는 사소한 실책의 순간들을 말이다. 원고의 유려한 문장들 사이에서 '베게'라고 적힌 단어를 발견해 '베개'라고 고쳐 넣을 때, 혹은 지금처럼 엄한 선생님 앞에서 이실직고하는 학생 같은 어리숙한 표정의 피아니스트를 만났을 때, 수민은 자신이 이들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았다. -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