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어디에 갖다 쓴다고요?

앙투안 콩파뇽, 문학의 쓸모

by 담화

라고 책 못지않은 도발적인 제목을 한번 붙여 보았다(하지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서 떨고 있다)


http://aladin.kr/p/PRIZ4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고상하게 제목을 붙였지만, 이 책의 원제는 조금 더 직설적이다. La littérature, ça paye! 이건 우리말로 대략 이런 뜻이라고 한다. 문학은 돈이 된다. 애교버전으로 바꿔 볼까. 문학도 돈 벌거든요? (자매품으로 우리 문학이 무시하지 마요, 가능?) 원제 그대로 붙였으면 어그로는 제대로 끌었을 것 같은데... 내가 다 아쉽다...


왜 이런 제목이 나왔는지는 훤히 보인다. 할 일이 점차 늘어나는 시대인데 시간은 여전히 한정된 자원이다. 더 안타까운 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다(내 일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닌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그 귀한 시간을 내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일이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너무 당연한 결론이고 납득 못 할 일도 아니다. 알려지기로 문학이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대차게 망해서 기분이 언짢거나 아니면 내가 못 가진 걸 가져서 배 아프게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고 대체 뭘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다 이게 끝이라고? 무한한 의문을 갖게 하는 그런 것이다(라고 문학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 그 허무한 일에, 대상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번쯤 누군가는 의문을 가졌을 질문에 용감하게 대답하고 나선 사람은 앙투안 콩파뇽이라고, 프랑스의 유명한 지성인이다(그렇지만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제는 기억하려고 한다). 저자는 무려 스물다섯 개의 챕터에 걸쳐 꼼꼼하게 문학에 얽힌 미신과 의심, 그리고 질문들에 대답한다. 좋은 글이고 훌륭한 책인데 읽어나가는 내내 아쉬웠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문학 애호가들뿐일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까닭이다. 손가락 두께만치도 안 되는 단편도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236페이지에 달하는 문학 옹호론+효용론을 읽을 가능성은 낮다. 내가 이번 주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 낮을 것이다.


문학은 타자성을 인식하는 수단이자, 여기 이 세상, 이 세계,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 그 진부함, 그 비루함을 인식하는 수단으로, 잘난 체하는 독아론이나 상아탑의 엘리트주의, 예술의 신비주의와 대조된다. -54쪽
문학 전문가를 위한 희귀한 문학도 있겠지만, 문학은 문 안팎의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에게 유익하며,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보들레르가 <부르주아들에게>라는 글에서 말한 바가 그렇고, 프루스트가 바쁜 사람들에 맞서 주장했던 바가 그렇다. 인문학 문화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유용한 자산이다. 자신의 언어를 알기 위해선 다른 언어에 부딪혀 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러 언어를 모르면 어떤 언어도 알지 못하고, <인간 희극>을 읽지 않으면 금융도 모른다. -129쪽


이 책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129쪽의 이 문단, '자신의 언어를 알기 위해선 다른 언어에 부딪혀 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를 고를 것이다. 모어의 특성과 개성을 가장 빠르게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이다. 모어가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딱히 누가 깨우쳐 주지 않아도 절로 체득하게 된다.


마찬가지다. 무인도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고독을 즐기면서 살 게 아니라면,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교류하며 공존해야 하고 그들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내게 나의 가치관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들을 이루는 윤리와 철학의 골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걸쳐 문학적 방식의 이해라는 풍조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인데 아래에 인용했듯 문학 관련 학과들은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이 아이러니라니. 이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가 코미디란 말인가.


바로 나의 동료들, 그들은 문학의 미래에 대해 실존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들 자신의 미래, 밥벌이의 미래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런 불안은 바로 대학에서 문학이 학과의 벽을 넘어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하는 때, 다른 학과들이 다시 문학을 찾고, 문학을 활용하고, 문학으로 전환하는 때에 찾아온다. 그런 때에 정작 문학 학과들은 축소되고 있다. 모든 학과가 문학을 찾고, 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점점 더 문학적이 되어가는 시점에 말이다. -170쪽


문학과 친해지면 여러모로 득이 된다. 진짜다. 증거가 필요한 분께 이 책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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