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전원경, 클래식 클라우드 | 페르메이르

by 담화

언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90년대 후반, 미술사를 전공필수로 이수해야 했던 그 시기에는 배웠던 기억이 없다. 내게 페르메이르가 최초로 이름을 기억에 새겼던 것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바로 그 <진주 귀고리 소녀>였을 것이다. 영화를 봤던 당시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한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일반적인 영화의 촬영 문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영화 자체가 페르메이르의 회화 기법을 그대로 영상화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커튼이 열린 창문처럼, 한쪽 방향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이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이것은 풍속화가 페르메이르의 가장 큰 회화적 개성 중 하나다. 영화는 시종일관 영화답지 않은 화면, 즉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영상미를 극대화하여 관객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영화 관람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분명히 다르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어도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까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영화가 무엇을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를 이제 와서야 비로소 이해한 기분이다.


http://aladin.kr/p/gN5DI


저자는 예술비평을 전공하신 분인데, 페르메이르라는 화가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그가 살았던 델프트라는 도시를 대중예술서라는 목적에 걸맞게끔 읽기 편안한 수준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독자를 17세기 네덜란드의 의 델프트, 페르메이르의 작업실로 이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상황은 어찌 보면 르네상스가 태동하던 15세기 피렌체와 엇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5세기 피렌체에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지배 권력이 존재했으나 17세기 네덜란드에는 그런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네덜란드의 권력은 시민계급의 손에 쥐여져 있었고 모든 그림들은 자연히 시민들의 기호에 맞춰 그려졌다. -53쪽
이 그림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그림의 주인공이 여염집 아가씨나 부인이 아니라 노동계층의 여자, '하녀'라는 점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 중에는 주부나 하녀가 집안일을 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적지 않다. 이런 그림들은 칼뱅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141쪽


그림이 좋으면 됐지 굳이 그림을 둘러싼 역사적 지식까지 알아야 하냐고 성가시게 여겼던 시건방진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림뿐일까. 음악도, 소설도, 어떤 학문적 이론을 하나씩 익혀나갈 때도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긋지긋한 역사를 왜 여기까지 끌고 들어올까 하고.

하나의 작품이 단독으로 탄생하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고 모두가 서로의 영향권에 들어 있으므로 그저 그 주변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사람)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고 풍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공부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나몰라라 하던 시절이, 이제는 이렇게 아쉽다. 한편으로는 버는 족족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던 시절에는 왜 이런 책이 덜 나왔을까 안타깝고 이제는 시간문제로 보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못 보는 상황에 애가 타고. 출판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좋은 기획도, 그냥 못 본척할 수 없는 시리즈가 더 많이 나오는 아이러니를 바라보는 마음은 정말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웃겼던 건, 와중에 이 책에도 '예나 지금이나 불경기에는 사람들이 문화 관련 비용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인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는 거다. 그것이 페르메이르에게 경제적 타격을 가져다주었고 결국 그의 이른 죽음을 불러왔을 거라고. 지난주에, 함께 일하던 회사의 해당 부서가 폐쇄됐다는 연락을 받고 잠시 망연했던 순간이 새삼 겹쳐 보였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일해오던 부서가 하루아침에 통폐합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의 심경이 어땠을지.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지만, 참...... 여러모로 심경 복잡했던 한 주였다. 시대가 언제건 문화예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시달리게 마련인 건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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