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라는 멋진 신세계

해도연, SF 쓰는 법

by 담화

SF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에게, 당신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단편소설 한 편, 시 한 편, 에세이 한 편을 매일매일 읽으세요. 참 쉽죠~♪?

... 일 리가 있나.


정확한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s://www.openculture.com/2012/04/ray_bradbury_gives_12_pieces_of_writing_advice_to_young_authors_2001.html


“단편소설 하나, 시 한 편, 에세이 한 편씩을(그러니까 세 개 전부 다!)매일 밤, 천일 동안 읽으세요.”

레이 브래드버리는 2001년의 Writer’s Symposium by the Sea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천일 동안, 매일 밤 잠자기 전에 단편소설 하나를 읽으세요... 그리고 시 한 편을 읽고... 에세이 하나를 읽으세요, 매일 밤 그렇게 천일을요. 천 일이 지나면... 당신 안이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겠죠?”


그리고 더불어 강조하기를, 그건 '고고학, 동물학, 생물학, 철학, 정치학, 문학 등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여진 것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 글을 잘 쓰려면 픽션이건 에세이건 일단은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관건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나캬아마 시치리도 호쾌하기 짝이 없는 문투로, '인풋, 인풋, 인풋'을 외친 바 있다(최신간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을 읽어보면, 분명히 눈으로 보고 있는데 아주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인풋(이 용어를 작법 단행본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해서... 움찔했다...) 타령을 하신다.

그러니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다 아는 인풋, 닥치는 대로 읽기는 살짝 넘어가고, 그다음 단계를 슬그머니 엿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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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SF의 불모지 같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해외 시장에 출간되고 주목받는 것은 물론이고 SF비평서도 하나둘씩 나오더니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SF작법서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 기나긴 세월을 곁에서 밟아간 1인으로서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심정이다(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SF를 너무 좋아해서, 도대체 SF를 어떻게 쓰면 좋은지 모를 사람도 분명 있긴 하겠지만, 높은 확률로 SF를 쓰고 싶어진 사람은 SF장르의 헤비독자일 것이 분명하다(99% 정도일 듯). 장르문학이 원래 그런 경향성이 높긴 하지만 SF는 그중에서도 각별히 높을 게 틀림없다. 이 장르가 원체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일까, SF를 다루는 책들을 보면 분명 SF의 정의와 역사부터 다루고 있긴 하지만 진정한 뉴비는 이걸 보고 있으면 도망갈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으러니까아 뭐랄까, 그러치 맞아 그거지, 하고 어깨 들썩들썩하며 웅장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책장을 넘기게 되는... 그 느낌이 너무 강해서. 또 하드 SF마니아들은 또 그 나름의 부심이 없지 않아서 같은 SF팬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순간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끼게 될 때도 없지 않다.


탁 터놓고 말해서,

아주 엄격한 팬들은, SF를 너무 좋아해서 쓰고 싶은 사람들은 뭐 굳이 작법서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른 장르의 글을 쓰시던 분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SF의 규칙과 세계관의 프로토타입을 빌리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이러한 이슈로 벌어진 논쟁을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르에 진입하고 싶어서 해당 장르의 클리셰나 문법에 대해 소소한 궁금증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 답을 얻어 공식처럼 적용한다고 그게 인상적인 이야기가 되어줄 거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빠르게'의 욕망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에는) 배우고 싶어 하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대수다. 매우 대수다.

맨땅에 헤딩하며 헤아릴 수도 없을 만치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자신의 직업적 지혜를 만들어간 업계 선배가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준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안 해본 사람은 정말 모른다. 그걸 왜 다 알려줘(내지는 그런 헐값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공짜로, 내지는 헐값(종이책 한 권 팔았을 때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율은 몹시 놀라운 ↓ 수준이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하고)에 기꺼이 알려주는 건 자신들이 발 담고 있는 그곳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것을 같이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그걸 좀, 제대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쩌다 얘기가 이렇게까지 빠졌지... 아, 그렇다. 간혹 좋은 ****장르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해당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보다 작법서를 추천할 때가 있다. 고유의 문법과 틀을 갖춘 그 장르의 이야기를 쓸 때 작가들이 어떤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는지, 그 장르에서 작가들이 던지는 문학적 도전이 어떤 것인지, 다른 장르와 단적으로 구별되는 가장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이론적으로 파악하고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을 때 확실히 이해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감동의 깊이도 물론이고. 물론 그것도 읽어주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은 부담 없이 얇고(요즘에 제일 중요한 덕목 아닌가, 이거?), SF라는 한없이 광대하고 말할 수 없이 경이로운 세계를 축조하는 골조를, 꼭 필요한 것만 모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편하게 추천할 수 있을 듯하다.


SF도 문학인 만큼 아무리 사실적이더라도, 철저히 고증을 따르더라도 결국 허구입니다. 하지만 SF의 거짓말은 문학의 허구성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제 생각에, 이 거짓말은 경외감과 더불어 SF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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