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내겐 철칙이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면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맞닥뜨려도 웬만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반응하기보다, '도대체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말)할까(이 일은 무엇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걸까)'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생긴 데는 뭐 그럴만한 사연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그럼 오늘은 뭘 얘기하려고 했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뭐가 문제냐'라고 내뱉게 만드는 사람이 한 분 계신데, 나한테 (종종) 굉장히 좋은 사람이면서, (때때로)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이다. 흠. 우리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정도로 맞불을 놓으며 대립하는 일이 그리 잦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가 싸움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정. 귀찮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도 여전히, 예전부터 늘 같은 이슈로 싸우고 지금도 싸울 수 있는 건 바로 '감정 분류 및 명명 실패' 때문이다. 나는 감정에 굉장히, 아주,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설레는 것과 기대하는 것은 퍽 다른 종류의 감정인데, 나와 종종 싸우는 그분은 절대로 이걸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과도하게 분류 집착증이 있나 해서 GPT-3에게 물어보니 그저 데이터 덩어리일 뿐인 이놈도! 이자식조차 그 두 가지를 정확하게 분류할 줄을 알았다! 아니 어차피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좋다. 사실 설레는 것과 기대하는 것 정도는 조금 분간 못 해도 크게 지장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초조하다'와 '예민하다', '불안하다', '조바심치다' 등의 감정은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절대 같지 않다. 그런데도! '아, 짜증 좀 내지 마!'로 환원시켜 버리면...
나 너랑 대화하기 싫다고.
그래서 입을 다물어 버리면 왜 또 말을 안 하냐고... 말해봤자 짜증 낸다고 할 거잖아... 맞잖아? 아니라고! 의 무한루프.
이런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서설을 왜 가지고 왔느냐면, 요즘 세밀하게 결이 다른 감정들을 학술적으로/사회학적으로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게 아주 기쁘다는 말을 하려고 그랬다. 세상에 이렇게 다종다양한 감정이 있으며, 관심을 갖지 않고 대충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 다르다는 걸 부디 (제발) 많은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아주 크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하나의 감정이, 이렇게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하면 기나긴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다학제적으로 분석해야 할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적지 않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8153735
노스탤지어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인기 있는 정서다.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는가 하면, 이 정서를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해서 대승을 거둔 유명인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Make America Great Again!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은 따스하고 좋은 것이다. 흘러간 과거는 늘 좋은 것이었다.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적극적으로 미화한다. 뭐, 실제로 좋은 것도 많기야 했겠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의 불가역성이 자아내는 어렴풋한 과거의 향취. 이 어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을쏘냐.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왜냐하면 이건 정말이지 저항할 수 없는 초강력 치트키이기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노스탤지어(향수)의 감각을 심리학, 문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의 관점과 역사를 빌어 철저하게 파헤친다. 향수병의 의학적 진단이 언제 최초로 이루어졌는지부터 시작하여 이것이 사람의 심리를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마케팅 전략으로서 위상을 떨치게 된 근래에 이르기까지, 노스탤지어를 전방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스탤지어만큼 사적이면서, 공적일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이 또 있을까?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어찌 됐든 기억은 틀리기 십상이고 미덥지도 못하다. 노스탤지어는 정서적 상태다.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에 속한 순간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 노스탤지어는 이런 식의 재구성에 속한다.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감정을 채우고 금칠을 한 다음 장밋빛 조명을 한껏 비추는 것이다. -15쪽
사회학자 야니스 가브리엘에 따르면 노스탤지어는 "인민의 최신 아편"이다. 전 세계의 포퓰리즘적 움직임은 노스탤지어를 활용하고 남용한다는 이유로 거듭 비판받는다. 이 움직임들이 미화하는 과거의 이미지들은 지나치게 백인적이고 지나치게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거듭 비판받는다. 하지만 노스탤지어는 우파의 전제 조건만은 아니다. 좌파 역시 파리코뮌, 소비에트 연방, 영국의 ...(생략) -35쪽
사회가 변화 발전하면 노스탤지어의 의미도 함께 진화한다. 도리가 없다. 인간은 자기가 속했던 시간, 공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특별하고 친밀한 감정적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가장 좋았던 시절, 자신들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를 다시 한번 현재 속에 재현하고 싶어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다. 다만 그것을 정치적 수사, 집단의 정체성으로 전이하면 필연적으로 거기엔 있어서는 안 될 욕망이 싹틀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 분야에 한해서 노스탤지어적 정서를 차입하여 슬로건화하는 정치인/정당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아씨 정치 얘기 진짜 하기 싫은데, 할 수 없다 이번 한 번만 한다). 가장 감정을 덜고 냉철하게 임해야 할 필드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연약해질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쓴다? 이건 우민 정치를 하겠다는 간접적 의사 표명(이라고 생각한)이다.
1970년대 당시 프레드 데이비스는 본인이 "사적 노스탤지어"와 "집단적 노스탤지어"라고 표현한 것을 구별 지었다. 전자는 개인이 자신만의 사적 과거- 가령 유년기의 기억들 -와 관련하여 느끼는 것인 반면, 후자는 사회적 차원의 노스탤지어, 즉 잠재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을 포착한다. "집단적 노스탤지어"는 종교 행사나 정치적 의례 또는 시위에서 표출될 수 있다. -372쪽
하도 강경하게 얘기해서 노스탤지어를 극렬히 혐오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스러운데... 개인적으로는 나 역시 노스탤지어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랑하고 아늑한 정서적 공간, 피난처를 싫어할 사람이 세상 천치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노스탤지어는 노스탤지어로 남겨두자는 얘기다. 우리에겐 힘들 때 마음 누일 곳이 필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