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빈, 시간의 물리학
시간여행, 좋아하십니까?
저는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그 불씨가 최초로 튀었던 것은 바야흐로 1990년대 중반즈음이었을 것이다...
시간역설 time paradox을 다루고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은 나를 완전히 타임리프물에 환장하게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 정도가 아니라 뭐랄까, 기반을 다진 쪽에 속하게 된다.
시간여행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나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대환장하게 만드는 양자역학의 세계에까지 발을 들이게 되는데... 미하엘 엔데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또 다른 기회에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말을 아끼련다. 여하간, 남들은 인민군의 침입도 막아낸다는 소위 중2병이 발동하는 시기에 나는 터미네이터를 끌어안고(?) 심각한 병을 앓았다. 미쳤나 봐,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되네. 근데 어떻게 이게 말이 돼?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다(엄밀히 말해 대중적인 차원에서). PC통신도 그로부터 수 세월 뒤에나 세상에 출현했으니, 아마도 내가 인터넷 시대의 10대였으면 하루 종일 PC앞에 붙어 앉아 관련 사이트를 모조리 뒤지고 있었을 거다. 전재산을 걸 수도 있다.
정확한 개봉일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터미네이터 1이 개봉했던 때는, 기억이 정확하다면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오픈했던 때와 일치할 거라 추측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친구들과 롯데월드에 가느라고 잠실역에 내렸을 때, T1의 개봉을 알리는 포스터가 지하철역에서부터 줄줄이 나붙어 있었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렇다, 신분증 검사 같은 걸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 그 감수성에 극장에서 봤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그때는 '친구들끼리 테마파크를 갈 수 있다니!'라는 사실에 엄청나게 감명받았던 시절이라 투머치테크노모던한 포스터에 아무런 감상을 느끼지 못했다(=잼민이에게 뭘 바라나)...
그래서 언제 봤느냐. 아마 열대여섯쯤이었을 것이다. 두어 달 쯤의 시차를 두고 이 영화들을 봤다.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덕후의 심장을 어쩌지 못하고 혼자 안달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는 달리 극 I인 데다(언어가 능통하지 못할 때 사람은 누구나 소심해진다) 도대체 '뭔가가 미치도록 좋고 너무 굉장해서 이걸 어디다 얘기를 안 하면 병이 날 것 같은데 어디의 누구와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애간장이 타는' 그런 심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좋을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시간역설의 이야기가 주는 전율감이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내는 거지. 세상엔 뭐 이런 천재들이 다 있지. 대략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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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정색).
픽션의 시간여행을 좋아하는 것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진지하게 논의를 이어가자면, 개인적으로 시간여행에 '찬성'하느냐고 묻는다면 진지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 그럴 리가요. Get your head out of the clouds. 안될 말이라고 생각한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과학이 경계를 넘는 시도를 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건드릴 게 아니잖아'라는 감수성이... 아니 외업서요. 왜! 와이 왜애! 사실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모험심이, 호기심이 가끔씩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뿐. 변방의 지구인 1은 열역학 법칙을 굳이 거스르지 말자는 소심한 평화주의자인 까닭에 개척자 정신이 풀풀 넘치는 과학자들의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무쟈게 재미있긴 했는데 너무 진지하게 이런 논의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소심하게 손을 슬쩍 들고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실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물리적인 시간여행까지는 몰라도 미래와 정보를 교환하거나 미래로부터 정보를 받을 가능성을 터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특수상대성이론으로 통하는 문의 자물쇠를 열게 해 준 열쇠는 빛을 포함한 전자기파 방사의 작용 방식을 묘사하는...(중략) -55쪽
이런 대목에 이르면 오케이 거기까지만요. 카르페 디엠. 현재는 아름답습니다. seize the day. 이런 것들을 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요, 세상이 눈부시게 휙휙 돌아가는 거까진 어떻게 적응해 보겠는데(AI도 사실 썩 마뜩잖은 사람),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랄지 법칙이랄지는... 가능하면 좀 안 움직여줬으면 하는 그런 소망이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런, 아직 열리지 않은 문들을 열어보고픈 호기심이 만만한 예비독자에게는 무척 가슴 뛸만한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 아닐까 한다.
1987년 모리스와 손은 변형된 형태의 카시미르 효과를 이용해서 웜홀을 열어둘 가능성에 착안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통상적인 전기장이나 자기장조차도 웜홀과 상호작용할 경우 "기묘한 물질의 성질에 근접한 속성을 띨 수 있으며, 만약 전자기장의 세기가 아주 약간만 더 크다면 웜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120쪽
"시간과 역사가 존재한다는 차고 넘치는 증거들은 지속적인 구조 안에서 정적인 배열의 형태로 암호화된다." 바꿔 말해서, 우리가 시간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이유는, 상술한 3차원적 스냅숏의 형태로만 세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버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사물들뿐이다"라고 단언한다. -143쪽
정말 놀라운 건, 오히려 우리 머글들(...-_-)은 허황하다고 여길 만한 아이디어들에 과학자들이 이토록 진지하게 매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수가 많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건너서까지 그 기대감과 열정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면. 그래도 말입니다 설령 '이게 되네?'가 되더라도... 시간여행은 굳이 상품으로 개발하지 않아 주시면 좋겠다는 소심한 바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