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노 키코, Heartbeat
선명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용기가 필요할 뿐. 하지만 잔잔하게 일어나는 물결처럼, 자기 자신도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이 존재한다. 한두 마디의 단어로 정의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전달할 수도 없고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이. 그런데 스스로 파악하기 난해하여 형언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그런 마음을 파고들어 존재를 알리려 노력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7732592
내게도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한동안 음악 관련한 도서를 집중적으로 읽었을 때 추천 목록으로 함께 떴던 것을 메모만 해 두고 잊고 지냈는데, 어떤 인연들이 그러하듯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손에 닿았고 이번에는 그 우연을 놓치지 않았다. 네 편의 단편을 모은 책의 제목이, 작가가 기획 당시에 붙여놓은 테마 컨셉 같았다. 심장이 박동하는 순간, 아니 어쩌면 늘 비슷한 간격을 두고 뛰던 심장이 순간 발을 헛디딘 것만 같은 순간을 그려낸 짤막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마흔을 목전에 둔 싱어송라이터는 집을 꿈꾼다.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그에게 마음 붙일 수 있는 공간, 혹은 사람은 일종의 로망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보인다. 그러다 새벽녘의 육교에서, 한 여자와 마주친다. 눈동자를 별로 가득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어떤 여자와. 여자는 누구이고, 왜 하필 그 시간에 그곳을 찾아오는 걸까.
작은 아파트. 눅눅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육교를 올려다본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그 사람이 오는 시간-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로 헤드라이트가 통과한다. -18쪽
유명한 바순 연주자인 엄마에게 입시 레슨을 받기 위해 멀리에서부터 찾아오는 여학생에게 동경을 느끼는 소년이 있다. 음악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유미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필사적인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고독과 자신과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돕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남자아이가 건넬 수 있는 위로란 실상 별 볼 일 없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별 것 아니라고, 애들이 한 번씩 그런 거지 뭘, 하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으리라.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그건 당신이, 유미 스스로가 해결한 것이겠지요.
나는 그걸 칭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걸 자랑스러워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어떤 표현을 쓰면 좋을지 몰라서 유미 계명(불교에서 죽은 사람에게 붙여주는 이름)에 별도 꽃도 태양도 넣어줄게...라고 말했습니다. -88쪽
아내 대신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남자는 설거지를 할 때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청소를 하다 우연히 듣게 된 옛날 노래 한 곡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어서 그는 그 음악을 듣고 또 듣는다. 그러다 갑작스레 되살아나는 어떤 기억의 편린 때문에, 그는 느닷없이 눈물을 후드득 떨구고 때마침 귀가하던 아내는 아연실색한다. 그는 무엇을 떠올린 것일까...
음악은 분명히 열네 살의 나를 등굣길에서 구원해 줬지만
음악은 나를 열네 살의 등굣길로 데리고 가버리기도 한다. -118쪽
인기 정상의 가수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정한 단 한 사람의 인터뷰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인터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녀가 받아들이는 인터뷰어가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를 데려왔으나 후배 에디터 역시 처음에는 실패한다. 인터뷰가 대체 무엇이기에, 한마디의 말에 누군가는 마음을 닫아버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여는 것일까. 에디터의 선배는 도대체 무슨 재간을 부렸기에 그 어려운 사람을 인터뷰하는 데 성공했던 것일까.
설명하기 좀 어렵지만 결국 개인 대 개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163쪽
누구나 다 아는 감정의 이름들로 여기에서 스쳐 지나가듯 깜빡이는 마음들을 부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마음들을 안다. 참으로 사소하고 별 대단할 것도 없어서 딱히 부를 이름조차 없는 이 하찮은 감정을 안다. 그러나 그 마음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커다란 감정들에 쉽게 휩쓸리곤 하는 연약한 자아가 종종 버틸 힘을 얻곤 한다는 사실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