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 리,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
안녕, 조. 사실 조의 이름을 부르면서 또 다른 조를 생각하지 않기란 상당히 힘들어요. 그런데 그쪽 조는 애틀랜타의 조 콴보다 대략 30년 정도 앞서 살았던 인물이에요. 조 마치라고 하는, 엄청난 걸크러시 매력을 자랑하는 사람이죠. 콩코드 출신이고요. 하지만 두 조 사이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시대적으로 그다지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았던 활동이었던 글 쓰는 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또렷하게 세운 것만큼 어마어마한 공감대가 또 있을까요? 이쯤 되면 거의 영혼의 쌍둥이 급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라니까요.
책의 첫머리에 눈길을 주자마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당신의 다부진 주장이죠.
사람들에게 착하게 구는 것은 자기 방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일 같은 거다. 결국엔 누군가가 슬그머니 방에 들어와 가장 좋은 모자를 훔쳐 가는 사건이 벌어지니까. -9쪽
이런 이야기부터 들려주는 건, 당신이 스스로 월급을 올려 달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 위해서였다는 걸 우리는 곧 알게 되죠. 그런데 급여 협상을 생각하며 가게를 들어선 당신에게 대뜸 날아온 것은 해고 통지였습니다. 행여나 그것이 아시아계라는 자신의 핏줄 탓인가 걱정하고 있는데 주인은 그것은 오로지 너의 '건방진 태도 탓'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건방진 태도.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정도를 지나친 솔직함일 때도 있죠. 악의는 없으나 덜 세련되었거나, 혹은 정확한 청자를 향해 드러낸 유머이기도 해서 결국 '마음에도 없는 좋은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기도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그 부인이 솔직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곤 했던 조를 내친 것을 너무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너무 사회생활에 닳고 닳아서 그런 것일지도요.
당신과 함께 사는 올드 진은 당신의 유일한 보호자이며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죠. 모자 가게에서 쫓겨난 이후 예전에 일한 적 있는 저택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스스로를 '한 번 버린 상한 달걀'로 비유하는 당신에게
"너는 상한 달걀인 적이 없었어." -35쪽
라고 말해 주기도 했고요. 생부라 하더라도 올드 진처럼 살뜰하게 당신을 챙겨주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올드 진과 당신은 이 시절의 애틀랜타에서 안타깝게도 소외된 계층에 속했기에, 어쩌면 그런 이유로 피로 이어진 관계보다 더욱 단단한 울타리로 서로를 감쌌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거주지는 상당히 특이하죠. <포커스>라는 신문을 발행하는 벨 씨 가족의 인쇄소 지하층에 비밀스럽게 숨어들어 지내고 있으니까요. 이 은신처에 얽힌 개연성은 조금 뒤로 젖혀두고 보자면 이만큼 조 콴의 또 다른 재능이 개화하는데 최적인 환경은 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독자 수를 걱정하는 벨 가족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다가(이 행위의 비윤리성에 대해서 당신은 '비열한 습관인 것은 알지만, 그들의 말소리는 수많은 ㅚ로운 밤에 안정감을 주었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요, 그 기분을), 마침내 칼럼니스트를 하나 찾아내야겠다는 그들의 결론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던 것도 그 은신처 내에 존재하던 배관 덕분이었으니까요.
판매부수 신장을 위해서라도 구독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중년 아주머니의 다정한 조언에 가까운 칼럼(그 시대엔 이런 게 굉장히 인기 있었나 봐요)을 하나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네이선 벨의 말은 당신의 내면 어딘가를 건드리고 맙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포커스」가 4월까지 2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려면, 벨 씨 가족은 에드나 아주머니와는 조금 다르게 급진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
우리 여성들이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더 진지한 관심을 다루는 칼럼을 준비해야 마땅하다.
누군가는 변화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사회의 최상층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 안과 밖을 모두 바라보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 나 같은 사람. -55쪽
그래서 당신은 포커스에 원고를 제공할 마음을 먹습니다. 짐작컨대 그것은 아마 일생일대의 용기가 아니었을까요. 누구에게든 처음으로 내 세계 바깥의 익명의 대중을 향하여 목소리를 낼 때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게 생각처럼 공포스럽지 않은 일임을 체감하며 안심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러니 첫 원고를 보내고 나서,
나는 전차의 좌석 주위를 돌아 들어가면서 「포커스」를 읽고 있는 승객들을 보면 근육이 경직된다. -101쪽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처음부터 장대한 비전과 실행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얼레벌레 시작하게 된 일에서 점차 뚜렷한 목표를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해요. 그 목표는 대체로, 주변의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점차 탄탄해지고요. 사실 조 -필명 스위티- 가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미 제법 세련된 글을 쓰게 된 스위티로서 갖게 된 전망은 생각조차 못 해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아니 거의 확신해요. 사람의 일이란 대체로 그렇게 '미약하게, 대단한 야망 없이' 시작했다가 들불처럼 크게 번져나갈 때가 있거든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글쓰기를 선택했던 조는, 스위티의 칼럼을 통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맞서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키워나가게 되니까요. 그건 결국 자신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일에 가 닿는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었던 거죠. 스위티의 칼럼은 재치가 넘치고 때로는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동반하는데, 때로는 인종과 성 역할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지기도 해서 보는 사람을 위태위태하게 만들기도 하죠.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고, 당신은 당시 소수인종에 속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많은 관습이 오래전에 이미 세상을 벗어나야 했음에도, 시든 나뭇가지에 헛되이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을 뿐이지요. 예를 들어 옆으로 앉는 여성용 안장은, 해부학적 관점에서는, 영광스럽게도 남성에게 더 어울려요. 피부색이 다른 이들에게 집안 살림을 맡기고 아이들을 돌보게 하면서도, 점원이나 조수로 채용하지 않는 관습도 이상해요.
(...)
독자들이여, 어떤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까요?
존경을 담아서, 스위티 -165쪽
당신 자신을 위해서 쓴 글이었지만, 결국 그 일은 벨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고 사회가 조금 더 평등한 곳으로 진일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선 벨이 "왜 스위티 양이 된 거죠?"라고 물었을 때, 당신이 그에게 들려준 대답은 몹시도 인간적이어서 가슴이 찡했어요. 맞아요. 좋은 사람이 어떤 결심을 했을 때는 항상 조금씩 이타적인 이유가 섞여 있더라고요. 당신의 대답도 그랬어서, 역시 조는 좋은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몹시 안심되었고 기뻤어요.
여전히 열심히, 어딘가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아?'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조 콴, 혹은 스위티. 멋진 글 계속 써나가고 있길 빌어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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