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이은희, 이서영,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2025.9.2 비문 전반적 수정//졸면서 쓴 건지 대체 무슨 소린지 스스로도 이해 못할 괴이한 문장이 제법... 많았습니다 ㅠ.ㅠ
지금 함께 읽고 있는 「이런 제목 어때요?」의 저자가 이 책을 보면 이 제목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당기는 데는 최고였다고 감히 생각한다. 고양이 종말과 SF가 당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SF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고양이 종말에 당연히 반대하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SF는 기본적으로 다수보다는 소수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장르인 까닭이다. 나만 고양이 없어, 의 대유행을 생각하면 어째서 고양이가 소수냐고 뾰족하게 묻는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2096278
그래서 왜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하느냐. 는 제목이 나왔는가 하면, 몇 가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일단 이 책에서 전제하는 바 고양이들은 오래전 환경 파괴 문제로 주민들과 함께 지구로 대피해 와서 고양이로 위장해서 살고 있는 외계인들이다. 이들의 대표 격인 (무려) 영주님이신 백설기 냥께서는 근자 들어 인간들에게 매우 실망한 나머지, 종족을 이끌고 대이주를 결심했고 출발일은 오늘 밤으로 예정한 참이다. 그러니까 백설기 영주님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지구의 고양이 멸종은 예정된 수순인 셈. 그러나 백설기의 충신이자 뭔가 그 이상의 모종의 애착관계가 있는 듯한 양갱은 지구를 떠나기 싫어하는 듯하다.
때마침 불어닥친(?!) 지독한 황사 때문에 고양이 외계인 둘과 인간 네 명이 우연처럼 한 곳에 발이 묶인다. 신작가와 한단결, 노학자와 정직원이 그들이다. 작가는 이름 그대로 작가고, 단결은 시위 현장마다 발로 뛰는 '귀여움 애호가'이기도 한 사회 운동가이며 학자는 은퇴한 생물학자이고 직원은 책방의 알바생인 동시에 과학 잡지의 수습기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갇힌 곳도 참으로 필연적으로 과학책방인데, 한단결이 자신이 참여했던 동성 결혼 합법화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줄지어 이어지는 질문과 토론은 백설기와 양갱의 귀마저 사로잡는다.
"동성애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차별금지법도 반대하고, 동성애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도 폐기하려 하고, 동성애자들이 같이 살게 된다면서 생활동반자법도 반대하는데, 로맨스에서는 동성애 장르가 대인기인데 거기다 남자가 임신하기까지 하는 장르가 메이저라고?" -31쪽
*메*버*를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러 처음에는 내가 시력이 이상해진 줄 알았다. 이걸... 이렇게 양지에서 이야기할 수 있... 구나? 싶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아무튼 무어라고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그 기묘한 기분. 그리고 이어지는 관련 소재를 다루는 책과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보면, 작가님들이 작정하셨구나 싶어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겐 일차적으로 일단 무조건, 몰랐던 거 하나라도 새로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적나라한 바람이 있다. 더불어 이건 정말이지 명문이로구나, 밑줄 좍좍 긋고 싶어지는 문장 하나만 만나도 그 독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웬만한 책은 어지간해선 '좋았어요'라고 말하게 되는데, 최근 읽은 책들은 유별나게 평균 이상으로 좋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브런치를 뜸하게 들어왔는데 다시 열심히 뛰어볼 생각(일단은 어깨 통증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이다.
더불어 그간 읽은 책들이 적지 않아서 이걸 언제 다 쓰나 싶긴 하지만, 아무튼 탄환 장전은 끝났으므로(?) 실린더 휘리릭.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단 읽고 싶어지는 책들의 목록을 엄청나게 건졌다. 물론 모조리 수중에 넣는다고 해서 당장 읽는다는 보장이 없고 죽기 전에 다 읽을 거라는 보장 역시 없지만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것이 미덕 아닌가...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최대한 널리 알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겨 적겠다. 내게는 너무 쇼크였고, 비윤리의 극치였고, 한 사람에게 몹시도 실망하게 되는(물론 그분은 내 실망 따위 개미 눈물만큼의 타격도 받지 않으리란 걸 알지만) 일이었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라고 불러다오> 폴 앤더슨, 1957
지구인들은 에너지 고갈로 자원을 채취하러 목성에 가요. 하지만 지구인은 목성의 극한 환경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의사 신체, 즉 모조 목성인을 만든 뒤 심령투사기로 뇌에 침투해 조종하는 방법을 써요. 생물 물리학자였던 주인공 앵글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되자 이 일에 자원했고, '조'라는 모조 목성인을 움직이면서 점점 현실의 허약한 자신보다 조의 강하고 야생적인 생명력에 동화되지요. 한편으로 이곳에 정착할 모조 목성인들의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하면서요. -114쪽
직원 : 왜 원작 표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학자 : 작가 본인은 뭐라고 하는데?
작가 : 죽어서 말을 할 수 없지요...... -116쪽
작가 :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제임스 캐머런은 도리상 최소한 이 소설에 대해 말했어야 했어요.
작가는 벌떡 일어나 책장을 뒤져 《SF 명예의 전당》3권을 꺼내고는, 책장을 팔락이며 <조라고 불러다오> 부분을 펼쳐 읽었다. 작가 : 이 소설에서 조의 외모 묘사를 읽어 볼게요. 물건도 쥘 수 있는 강하고 긴 꼬리, 고양잇과의 동물과 인간을 합성한 것 같은 모습, 긴 팔과 발달한 근육, 피부는 푸른빛이 나는 회색...... -117쪽
작가가 죽고 없다는 말에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작가가 죽고 없으면, 이래도 되나. SF 팬층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두터우면 두터웠지 얄팍할 리 없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의 본토에서 이 얘기가 나온 적이 없나. 정말 없나 싶어서 뒤져봤더니 SF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널리 회자된 얘기라고 한다. 하지만 법적 소송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고. 이 경우야말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져서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책 얘기하다가 표절 성토로 끝났지만, 끝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마무리 몇 마디 추가.
좋은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품게 하는 책이라고들 한다. 좋은 소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필연적으로 화자 혹은 다른 인물을 통해 독자는 어떤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의문은 절대 쉽게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거듭 곱씹고 반추하는 과정 자체가 답이 되도록 적절한 무게로 마음속에 자리를 깔고 앉을 뿐이다. 누군가 어디에선가는 한 번쯤 약자가 된다. 누구나 공평하게 약자가 되는 순간이라면 역시 노인이 될 때겠지만, 그 이전에도 얼마든지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약자가 되는 순간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어떤 억압의 질량을 알아차리고 절박하게 답을 구하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발 빠르게 머리를, 마음을 앞세워 세상의 약한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언젠가의 자신을 위한 저축이나 보험 비슷한 일이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사람은 다면적인 존재란 말이야. 세계 제일의 천재 재벌 국가대표 같은 것이 아닌 이상, 대개 사람은 모든 면이 평균 이상일 수 없고, 많은 부분이 분명히 소수자에 속한다고.
(...)
내 다수성은 내가 잘 다스릴 수 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내 소수성은서회의 도움이 필요해.
결국 나라는 총체가 잘 살려면 사회가 모든 소수성을 잘 돌보는 사회여야 한단 말이지.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