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찌, 과일
이렇게 누워서 굶어 죽어버려야지. 그러나 너는 못 굶어 죽는다. 밥을 먹게 될 것이다. 또 자신과 다투다 겨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지만 역시 밥을 차릴 생각은 들지 않아서 냉장고를 열어 사과를 한 알 꺼냈다. 대충 껍질에 물을 흘리고 칼을 넣어 한 조각만 떼어먹었다. 아무리 울상을 해도 과일만은 입으로 잘 들어간다. -33쪽
읽고 있던 책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저자의 차진 글솜씨든, 동일한 장면에 놓여본 적 있어 깊이 공감하게 되는 장면이든, 깊이를 알고 있는 감정에 재차 매몰되는 순간이든 그 어떤 것에든.
이번에는 글쓴이의 괴로운 찰나였다. 삶이 싫고 성가시고 지리멸렬해지며 아무려나 상관없겠다는 자포자기의 순간에도, 그는 과일만큼은 입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인지. 그리고 생각한다. 매일매일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우리에게 그런 힘겨움을 벗어나기 위한 처방은 꼭 필요하다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면야 최고 좋고, 그게 어렵다면 먼 타인의 경험담을 듣는 것도 좋겠다. 여기서 가까운 타인을 굳이 제외한 것은 그들은 담백하게 경험담을 들려주기보다는 애정 어린(+별로 반갑지 않은) 잔소리를 더 늘어놓게 마련이니까.
성장하는 내내, 빠듯하게 살림을 살아내야 했던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일만큼은 원 없이 먹고 자랐던 글쓴이는 어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묻는다.
우리 집이 결코 잘 사는 집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과일만큼은 그렇게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냐고. 그의 어머니는 아주 담백하게 이렇게 대답하신다. 맛있어서. 실제 본문에는 맛있어서?라고 의문 반 확신 반을 섞은 물음표가 구두점을 대신하고 있는데, 듣지 않았어도 이 말을 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표면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나 '돈이 없어도 이것만큼은 너무 좋아서 포기할 수 없지'라는 마음만큼은 너무 잘 아는지라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좋은 일보다 힘든 일이 백배쯤 많은 삶에 조금 무리하는 선에서 손쉽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지폐 몇 장쯤 나갈지라도 손 뻗으면 구할 수 있는 궁극의 포션 하나쯤 있어줘야 사는 맛이 있지.
그것도 그렇지만, 뭔가 하나를 지독하게 좋아하다 보면 겉핥기식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보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무엇을 아주 진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남들은 잘 모르는 깊은 이야기를 알게 되는 보너스도 있다. 이거 덤이야, 하고 과일 트럭 아저씨가 쓱 넣어주는 귤 한 알 같은 것. 좋아하는 음식, 물건, 장소, 기타 등등의 것을 신나라 써 내려간 에세이들엔 꼭 그런 잔재미가 곳곳에 머리를 감추고 있다가 갑작스레 까꿍 하고 얼굴을 내민다.
그나저나 과일이 그렇게 맛있나. 있으면 먹어도 굳이 내 돈 주고 사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누군가는 과일 없이는 삶도 없었을 것처럼 살아온 시간과 순간과 사람 사이를 이렇게까지 과일과 촘촘하게 엮을 수가 있다니. 이쯤 되면 경지라고 할 법하다. 과일 맛을 잘 모르는 나지만, 어쩐지 글쓴이를 (굳이) 과일에 비유하자면 가을볕에 잘 익은 사과일 것 같다. 부사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고 약간은 새콤한 맛이 나는 그런 사과.
결과는 열매를 맺는다는 말. 나는 지금도 상처받는다. 상처는 때로 작아지고 영원처럼 보존되기도 한다. 그런 상처를 입은 채로 살아 있다. 그래도 돼. 그렇게 살아가면 돼. -59쪽
그러니까, 나는 수박을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 만화 수박 손님 수박 계곡 수박 파는 수박 우리 집 수박 위의 분류는 대부분 먹는 방식과 형태에 따른 것이다. -89쪽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169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