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비눗방울 퐁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이 책을 이야기해야 하지? 책을 덮고, 하고 싶은 말이 그야말로 비눗방울처럼 연쇄적으로 퐁퐁 솟아오르는 이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별이 남긴 상흔. 혹은 이별 후에 사라진 것. 혹은 뒤바뀐 것.
이별 후에 남은 그림자. 이것도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말이겠지. 혹은 이별 후에 마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 내지는 온도. 무엇을 갖다 붙여도 이유리의 이 소설집에 대한 적당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이유리 작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니 굉장히,라는 부사가 적절치 않다고 느낄 정도로 이보다 훨씬 더 최상급의 어떤 찬사가 느껴지는 부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유리를 좋아하는데, 뭐랄까- 이유리 작가는 그 어떤 작가와도 같지 않게, 현실의 표면 위에 아주 얇은 환상적인 막을 덧씌운다. 시접선이 안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그냥 정말 원래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이 위의 어딘가에는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으로.
그만의 고유한 개성, 그러니까 누구나 흔하게 얘기하는 천연덕스럽고, 당연히 이 세계 어딘가에 있어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듯한 허무맹랑한 능청스러움. 그런 것들을 잘 버무려서 소설을 쓰는 작가니까 어떤 황당무계한 설정이 나오더라도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것 역시 이유리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그렇게 축조된 이유리 유니버스의 인물들은 때론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금주에 녹여 달큰한 술로 발효시키기도 하고 비눗방울이 되어 삶을 미련 없이 떨쳐내기도 한다. 분명히 슬픈 이야기인데 슬프다고만은 할 수 없는 미묘한 비터스위트한 맛. 그게 이유리 소설의 맛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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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은 대부분 이별이 주요한 소재다. 그 이별을 어떻게 수용해 가는지, 그 이별이 홀로 남은 사람이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게끔 드리우는 흐릿한 잔상과 그 위로 흘러가는 담백한 혼잣말 같은 것들을 총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온통 이별 이야기이니 어쩐지 속이 답답해질 것만 같은 선입견이 드는 것도 당연할 텐데 장담컨대, 이만큼 산뜻한 이별 이야기도 보기 힘들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크로노스는 어떤 사람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추출해서 가상공간에 그 인물을 새롭게 조형하는 서비스에 대한 단편이다. 주인공은 여기에 반감이 굉장히 큰 사람이다.
말이 좋아 코로노싱이지, 사실 그건 엄마에게서 우리 입맛에 맞는 모습만 쏙쏙 뽑아내 새로운 뭔가를 만들고는 그걸 엄마라고 여기자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장 난 컴퓨터에서 쓸 만한 부품만 빼내어 새 컴퓨터를 맞추는 것처럼. 그게 우리 엄마에게, 아니 사람에게 할 짓인가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거였다. -14쪽
이 사람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크로노스라는 서비스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옳지 않은 서비스 혹은 상품처럼 느껴지는데, 이야기의 막판에 이르면 정말 그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정말로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온다.
주인공의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언니는 한쪽을 떠올리면 한쪽을 잃는다고, 그래서 결국 둘 다 잃는 것 같다고 했지. 난 그 반대야. 한쪽이 있음으로써 다른 한쪽에게 없는 걸 다시금 떠올릴 수 있고 그래서 난 둘 다 온전히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언니, 그게 사랑이야. 언니는 누군가를 깊이깊이 사랑해 본 적이 없어. 송 선생 그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야. 그럴 거면 결혼, 하지 마.” -42쪽
어느 한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그게 어쩌면 이유리 소설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 건 이 소설집에서 어떤 사람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는 그런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정의를 갖고 있고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이런 사고방식도 있음을 서글프게 호소하는 그런, 그런 것.
우리는 모두 제가끔의 방식으로 옳고, 제가끔의 방식으로 그르다. 그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건 나의 삶이나 나와 가까운 타인의 삶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완벽한 타인의 삶과 그의 고통을 건너다보다 불현듯 깨닫곤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정의를 품고 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안기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언젠가는 정우에게도 이 장면을 꼭 보여 주고 싶었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며 사는 생물들도 저기 저렇게 많다는 것을, 별생각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인 것들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저마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61쪽
사랑이 부서진 이후 남은 사랑을 감정 이식 센터를 통해 팔기로 결심한 사람. 이만하면 충분히 살았다 싶어서 비눗방울이 되는 약을 먹은 사람.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안고 살기보다 기억 담금주로 만들어 마셔버리겠다고 결심하는 사람.
이렇게 뭔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 살면 좋지,라는 질문을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남겨지는 사람이 될 운명에 언젠가는 처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또 누군가를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이고. 그냥, 사람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하찮은 감정싸움 따위,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