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서라야- 집에 가자-”
하진이 어린이집에 들어서며 경쾌하게 아이를 불렀다. 종일반 아이들에게서는 늘 모종의 긴장감이 읽히곤 했고, 그것이 어디에서 솟아나온 감정인지 모를 수 없었던 하진은 서라를 데리러 갈 때면 화원에서 일하던 중에 종종 떨어지곤 하는 가지나 꽃송이를 모아 들고 가서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서라 엄마, 이거 뭐예요?”
일종의 놀이 모임 멤버가 있어서 엄마들을 대하는 법이 조금 몸에 익은 아이들은 하진을 곧잘 이모라고 부르곤 했다. 하진을 두고 이렇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서라 엄마, 라고 호명하는 아이들을 보면 하진은 기분이 반음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응, 이모가 일하다가 생기는 꽃이 많아서 너희 나눠주려고 가지고 왔지.”
하진이 그렇게 말하면 대개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일을 하는데 어떻게 꽃이 생겨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어요, 라고 하진은 대답해 주며 어떤 일인지 한 번 생각해봐 달라고 주문을 냈다.
하진이 그렇게 뭔가를 나눠줄 거리를 들고 오기 때문일까, 종일반 아이들은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엄마가 자신의 엄마가 아니어도 하진만큼은 기꺼이 반겼다.
“엄마아!”
“와, 꽃 이모다!”
늘 고정적으로 남아있는 아이 셋이 우르르 달려 나와서 저마다 손을 내밀었다.
“이모, 오늘도 꽃 있어요?”
“그럼 있지, 왜 없어.”
하진이 웃으면서 종이봉투 안에 손을 쑥 밀어 넣다가, 짐짓 방싯방싯 웃으며 넉살을 떨었다.
“그런데 오늘은 제일 예쁜 말 해주는 사람한테 먼저 고르게 해 줄게.”
“무슨 예쁜 말이요?”
늘 앞장서길 좋아하는 아리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하진이 턱을 매만지며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거나 괜찮아. 누가 들어도 예쁘고 좋은 말.”
“엄마, 나도 해도 돼?”
친구들 틈에 끼어서 신이 났는지 서라도 손을 번쩍 들며 참견했다.
“해도 되는데, 꽃은 친구들한테 양보하자. 서라 괜찮지?”
“넵!”
매일 겪는 일이라 익숙해서인지 담당 선생님은 한발 물러나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준비된 사람부터 말해줄래?”
“저요!”
“좋아, 아리부터!”
긴 머리를 옆으로 땋아 내린 아리가 의욕적으로 두 팔을 앞으로 동그랗게 휘저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최아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했습니다!”
하진을 둘러싼 나머지 아이 셋은 다소 당혹스러운 듯이 우물쭈물 눈치를 살폈다. 자신들은 아마도 영 방향을 잘못짚었다는 듯이, 틀린 답을 준비해서 이젠 어떡하냐는 듯이 곤란해하는 표정을 잔뜩 머금은 아이들을 보던 하진이 손뼉을 짝 치며 크게 말했다.
“진짜 예쁜 말이다, 아리야. 엄마가 해준 말 중에서 아리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가 보구나?”
“네!”
“좋아, 좋아. 백 점짜리 대답이야. 그런데 일단 대답 다 들어보고 이모가 일등 누구인지 말해 줄게, 그래도 되지?”
몹시 흡족해진 얼굴로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한발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자기만큼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거라 확신하는 티가 완연했다.
“수혜는 딸기시럽 뿌린 아스크리미가 좋아요.”
남아있는 아이들 중 가장 어린 수혜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하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모도 딸기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분홍색 예쁘잖아, 라고 말해주었다. 수혜의 얼굴이 확 피었다.
“그럼 영인이도 예쁜 말 하나 들려줄래?”
“매일 꽃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모.”
가장 사회적이고 정석적인 대답에 하진은 저도 모르게 선생님과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선생님은 빨개진 얼굴로 웃음을 꾹 눌러 참고 있었다. 익살스럽게 눈썹을 한번 치켰던 하진이 허리를 굽히며 일곱 살 꼬마를 향해 정중하게 답례했다.
“아뇨, 뭘요. 이런 점잖은 인사를 다 받을 줄은 몰랐는데. 고마워요, 신사시네요.”
뜻밖의 칭찬을 받은 영인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세상에, 영인이 어머니. 아들이 무슨 양반댁 도련님 같네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하진이 서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우리 서라 씨는 무슨 말을 하려나?”
“엄마 꽃 예쁜 꽃 마음 꽃.”
하진이 잠시 멍해졌다. 조그만 아이가 운율을 살려서 노래처럼 읊은 것도 놀라웠지만 제 엄마의 속내쯤이야 진작에 다 읽고 있었다는 듯 담백하게 읊조리는 태도가 하진을 잠시 침묵 속에 빠트렸다. 조금 마음이 먹먹해진 탓에,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한 하진이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와, 일등 뽑아줘야 하는데,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모가 일등 못 뽑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래도 사회 물을 먹었다고, 제일 연장자인 영인이가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그럼 제일 어린 수혜가 먼저 뽑아서 그다음으로 어린 서라 주고, 서라가 뽑아서 아리 주고, 아리가 뽑아서 저 주면 안 돼요?”
“진짜 좋은 생각이다, 우리 영인이가 천잰가?”
하진의 너스레에 일곱 살 아이가 활짝 웃었다.
[표제어_천진난만/모티브_윤석중 「넉점반」]
사진: Unsplash의TOMOKO U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