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 별 걸 다!

by 담화

저물녘의 거리는 부산스럽다. 늦가을로 가고 있나 싶었는데 부쩍 차가워진 바람에 기침 소리는 흔한 배경소음이 되었다.


“오랜만이다, 야.”

“그러게요, 선배. 자주 보면 좋겠는데, 쉬엄쉬엄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더라, 바빠 보였어.”


몸을 뒤로 조금 젖힌 채로 수하를 보던 민형진이 적당한 말을 찾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있던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하진이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진 누나는 일해야죠, 제가 나왔으니.”

“오... 분업 철저한데?”

“하루라도 흐름이 깨지면 안 돼요. 나름 살아있는 걸 다루는 일이라.”


짐짓 엄격한 투로 설교하던 수하가 이내 웃음 지었다.


“그래도 좋잖아요. 힘들어 죽을 맛이긴 한데, 보람 있다니까.”

“... 너 우리 일 좋아했잖아.”

“지금도 좋아하죠.”


수하가 형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수하의 등 뒤로 숨찬 해가 까딱 까딱 넘어가고 있었다. 밤과 낮의 경계를 흐리면서,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 사이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수하처럼.


“좋아한다면서 왜 그만뒀어.”

“편집이 거기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세상 일이 다 편집이죠, 형. 저도 옛날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뭐든 다 이게 에디팅이더라고요. 거기에 한 10프로 정도의 센스. 그리고 책상 앞에서 떠나서 좀 건강하게 일하고 싶기도 했고.”


형진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떠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건강하게 일하셔?”

“그게 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든 디지털 디톡스는 불가능하다는 것만 확실히 깨우쳤달까.”


수하가 능청을 떨면서 형진을 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역에서 100미터 정도 멀어지자 여기저기서 음식 냄새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수하가 고갯짓으로 오른편을 가리키며 동의를 구하듯 형진을 쳐다보았다.


“이거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그럴 줄 알았어.”


평소 수하의 단골집이었던 듯 수하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몇 가지를 주문한 뒤에 형진을 자리에 앉혔다. 가게 내부와 수하의 차림새를 그제야 유심히 관찰한 형진이 오, 하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야, 이거 회사 사람들이 보면 놀라겠는데. 한때의 댄디보이가 이렇게 막일꾼 같아졌을 줄이야.”

“사람이 환경에 맞게 옷을 갈아입을 줄도 알아야죠.”

“그래도 이건 좀 많이 놀라운데.”

“그나마 형 만난다고 갈아입고 나온 거예요, 이게.”

“근데, 그게 먹고살 만큼 돈이 돼?”


호기심인지, 걱정인지 모를 질문이 기어코 눈치를 보다 보다 흘러나오고야 말았다. 수하는 쓰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빠르건, 늦건, 항상 그것을 궁금해했다. 궁금해하는 만큼 답해주고 싶었어도 사람마다 먹고사는데 필요한 최저선이란 것이 모두 달랐으니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가 먹고 살 정도는 돼요. 생각보다 요즘 반려식물 붐이 일어난 것 덕을 본 것도 확실히 있고요.”

“하긴 그런 트렌드가 중요하지. 넌 그런 거 잘 잡긴 했어, 예전부터.”

“그런데 트렌드 못 탔어도 이 일을 계속했을 것 같긴 해요. 좋거든요. 일단 고객들이 기본적으로 착한 것 같아요.”


형진이 휘익, 휘파람을 불어 젖히며 테이블에 놓인 소주병을 돌려 땄다. 조금 더 노골적인 질문이 나왔다.


“잘 안 돼도 계속할 것 같아?”

“잘 되게 하려고 여러모로 신경 쓰고 있어요. 전 직장 경력을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수하가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내며 형진이 따라둔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곤 인상을 썼다.


“안 마시다 마시니까 무슨 독약 같네.”

“어떤 식으로 써먹고 있는데?”

“뭐... 말하자면.”


수하의 시선이 잠시 식당 벽에 걸린 메뉴판 위를 휘적휘적 돌아다녔다.


“기획? 아무래도 컨셉 잘 잡아서 어떤 의미값을 주면 일종의 스토리 라인이 생기니까. 함수 설계하는 것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지금 너 말하는 거 그거 괜찮다. 비유로도 방법론으로도.”

“실제로 그렇게 써먹고 있어요. 상품 라인업 만들 때도 쓰고 기획상품 만들 때도 쓰고.”

“누가 마케터 출신 아니랄까 봐 상품 상품 하냐.”

“그래도 무슨 가치 운운하진 않았잖아요.”


수하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 입사한 이래 내내 함께 일하다 홀로 그곳에 남은 형진이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아주 약간 반성했다. 아무리 어린 후배가 무슨 용기로 새로운 업을 개척했는지가 궁금했다고 한들, 너무 캐물었던 건 아닐까 하고.





[표제어_미주알고주알/모티브_블랙죠「식물, 같이 키우실래요?」]

사진: UnsplashNagy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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