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허기질 때 간단한 위로를

간단하고 배부르게 폭신폭신 두부전

by 담화

정신이 하나도 없던 연말이 이젠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아. 너희의 연말은 어떨까. 엄마는 그래도 20대 중반 넘어가면서나 시간 가는 게 너무 빠르다, 아쉽다,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너희는 벌써부터 그러더라. 나이 먹는 게 너무 싫으니,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버리느니 어쩌니. 그런 이야기를 귀동냥하면서 엄마는 종종 신기해져. 이 애들의 이 시간관념은 어디서 왔을까. 무엇이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흐른다는 감각을 심어놓은 것일까.


익히 알다시피 나이를 먹으면 시간의 흐름을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고 느낀다고 하잖니. 그래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게 하려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모르는 것들을 배우고, 낯선 것에 마음을 열어 보라는 둥, 이런저런 조언이 많지. 그런데 그것도 사람 나름인가 봐.


예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속도이긴 해도 그래도 엄마도 나름으로 시간을 조금씩 늦추는 방법을 몇 개 개발하긴(?) 했어. 시간을 짧게 나누어서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거지. 이게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고는 못 해. 어떤 사람은 하나의 일에 충분히 긴 시간을 들여 집중하는 게 체질적으로 맞기도 할 테니까. 그에 비해 엄마는 소위 뽀모도로 기법으로 시간을 쪼개 쓰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토막토막 일을 나눠하는 데 최적화돼 있는데, 그러다 보니 체감상 하루가 상당히 늦게 흘러간다... 는 감각이 있긴 해.

물론 그렇다고 그게 전체적인 시간 감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허무감은 좀 덜 드는 조삼모사 스타일의 효과는 있어.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안 흘렀던 때는 역시 고3 때가 아닌가 싶어. 너희는 모두 알겠지만 엄마는 그때 혼자 한국에서 수험생 생활을 했으니까. 적지 않은 생활비를 드린 친척 댁에 얹혀살던 고3이는, 엄마가 학원엘 안 데려다줬네, 도시락 반찬이 마음에 드네 안 드네를 놓고 투덜거리는 동급생들한테 종종 속으로 화를 냈어. 온 집안 식구가 너한테 맞춰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절하면서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뭐 이런 투덜거림도 종종 표정으로 드러났을지도 몰라.

그 불평은 사실 어느 정도는 부러움이었지. 나도 아침에 누가 깨워주면 좋겠다. 먹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봐 줬으면 좋겠는데. 학원 끝나는 한밤중에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해.


그 시절 엄마를 먹여 살린 음식 3종 세트 중에 이걸 빠트릴 수가 없네. 사실 별 대단한 건 아니지. 으깬 두부에 냉장고의 자투리 채소를 잘게 다져 넣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뒤 부침가루를 약간 넣고, 달걀을 여러 개 깨어 넣어서 섞어 부친 반찬. 그땐 하루가 멀다 하고 이것만 먹느라고 너무 질려서 몇 년간은 두부와 달걀이 한꺼번에 들어간 음식은 쳐다도 안 보기도 했는데 엄마가 결혼을 하고,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이 되니까 그 재료를 더는 피해 갈 수도 외면할 수도 없게 되더라고. 그리고 두부와 달걀은 사실 퍽 잘 어울리는 단짝이기도 하고, 몸에도 좋으니까.


만드는 방법은 너무 간단한데 포만감도 좋고 맛도 담백하고 괜찮아서 익혀놓으면(익혀 놓을 필요까지 있는 조리법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여러모로 요긴할 거야. 이미 간단히 설명했는데, 이 반죽에 참기름을 한 방울 정도만 넣어주면 선이처럼 달걀 비린내를 질색하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을 거고. 부침가루를 넣어줬기 때문에, 꼭 팬케이크처럼 살짝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는 게 입에 한 입 물었을 때 포근포근하고 폭 꺼져드는 게 이불 속에 들어간 기분하고 비슷하기도 해.


여기에 맑은 된장국이나 조금 매콤한 육개장 같은 게 있으면 다른 반찬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뭐, 구운 김이나 김치 정도만 있어도 금상첨화 아닐까. 사실 한 끼의 밥상에 엄청나게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필요한 건 아니야. 따뜻하게 갓 지은 밥 한 공기, 온기가 맴도는 반찬 한 가지에 국물만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거든. 아무리 바빠도 그런 한 끼를 챙기는 건 잊지 않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어. 오늘도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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