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안 먹고 넘어가면 서운한 달래장
확연히 겨울을 느낄 수 있는 날씨가 되었네. 감기조심해야 될 때가 됐어. 이런 날엔 무얼 먹는 게 제일 좋을까.
요즘 모 OTT에서 요리 서바이벌 예능프로가 한참 인기가 있잖아. 엄마는 원체 TV라는 걸 안 보는 사람이지만, 그런 건 너희가 볼 때 가끔 오며 가며 잠시 시선을 줄 때가 있지. 특히 엄마가 안 써 본 재료로 음식을 한다든가, 익히 알려진 재료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나오면 아무래도 관심을 끄는 게 사실이긴 해. 아는 맛의 즐거움도, 익숙한 맛의 참신한 변주의 놀라움도 모두 우리에게는 흥미진진하니까.
하긴 어디 음식만 그럴까, 세상만사 모두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절묘한 어울림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감탄을 안기곤 하지.
너희도 그렇지만, 엄마도 한철 먹는 음식 중에서 유독 좋아하는 게 있어.
사실 별 것도 아니지. 찬바람이 불면, 엄마는 항상 곱창김을 한 톳 사서 냉동실에 가만가만 쟁여두곤 해. 그리고 대여섯 장씩 꺼내서 가스불에 조심조심 굽지. 너무 바싹 구워서 탄내가 나지 않도록, 그리고 바다의 날것 냄새는 조금 날아가도록. 이렇게 잘 구운 김을 크기 맞춰 잘라서 반찬통에 넣어 둔 다음에는 항상 달래장을 만들어.
달래를 다듬는 방법은 쉽고도 번거로워. 달래의 알뿌리 끄트머리에 붙은 흙과 껍질을 조심조심 떼어내준 다음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주는 거지. 말은 참 쉬운데 이게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요구하곤 해. 보통 고무줄에 묶어 파는 달래를 그렇게 일일이 손질하는 작업이 끝나면, 이젠 달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쫑쫑 썰어주는 거지. 알뿌리 부분은 잘게 썰어도 되고 그냥 그대로 넣어도 되는데 엄마는 개인적으로 칼등으로 지그시 눌러 으깨어 넣는 쪽을 선호해. 알싸한 향이 확 퍼지거든. 그렇게 손질해 둔 달래에 고춧가루와 통깨, 참기름과 간장을 넣고 잘 뒤섞어 주면 그게 달래장이 돼. 별 건 없지.
이 달래장은 배추전 같은 겨울 한정 부침개를 찍어먹어도 맛있고, 계란에 곁들여 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최고의 조합은 잘 구워놓은 곱창김과 함께 내놓을 때가 아닐까 싶어.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겨울의 한 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 해치울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곱창김은 없고, 아직 김을 사다 놓지 않았다는 걸 깜빡하고 달래를 사들고 들어온 날이었을 거야. 달래는 빨리 망가지니까, 뭐든 해 먹어야 하는데 뭘 할까. 달래 잔뜩 넣고 된장찌개를 끓일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건조 식자재를 보관하는 트롤리를 쳐다보니까 마침 건파래가 있는 거야. 건파래는 기름에 살짝 버무려서 팬에 빠르게 볶아낸 다음, 설탕과 소금을 적당히 흩뿌려 뒤섞은 다음 단짠 맛으로 밥반찬으로 종종 먹곤 했는데 갑자기 그걸 보니까, 이거다 싶더라고. 그래서 늘 실험정신(?) 강한 엄마답게 건파래를 볼에 잔뜩 담고, 달래장을 넉넉히 만든 다음 거기다 넣고 한꺼번에 살살 무쳤어. 나물처럼. 맛있더라고. 그래서 잘 먹겠구나 예상은 했는데 가득 찼던 반찬통의 절반을 한 끼에 다 비워버릴 줄은 몰랐네.
맛있는 나물 반찬이 생기면 항상 “계란 프라이”를 생각하는 엄마는 또 그랬지. 여기다 계란 비벼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 하고. 엄마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어.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뭐든 그렇게 냅다 비벼 먹는 걸 좋아할까 하고 말이야. 이젠 엄마도 알지. 그냥, 한 끼만이라도 ‘대충, 하지만 남은 집안일을 해낼 기운은 얻을 수 있기를’, 이게 얼마나 엄마들의 간절한 희망사항이었을지.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엄마도 그런 ‘냅다 비빔밥’을 당연한 듯 점심밥으로 먹고 있더라고. 근데 있지, 엄마를 너무 안쓰러워하지 않아도 돼. 왜냐면 엄마는 그런 희생적인 엄마가 아니어서 맛없으면 절대 그렇게 먹지 않기도 하거니와, 너희도 알다시피 식탁을 차려놓고 앉아서 눈을 치켜뜨면서 엄마도 맛있는 거 먹을 줄 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이잖니. 그리고 엄마는 항상 그렇게 생각해. 희생적인 엄마가 되기보다, 수고하고 있는 만큼 엄마의 수고를 너희가 유념하도록 가르치는 게 더 마땅하다고.
둘째까지는 그게 확실히 입력이 된 것 같은데, 우리 막내는 언제쯤 ‘내가 맛있는 걸 좋아하는 만큼 엄마도 맛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제 어디서고 떠올리게 될지 그건 좀 궁금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맛있는 걸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