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버전을 만들고 싶은

조금만 더 수고하면 더 맛있어지는 카레

by 담화

이젠 완연히 겨울의 날씨를 느낄 수 있는 12월 중순이 됐어. 그렇지, 남매들?


'뭔가 좀'을 먹긴 해야 하는데, 도통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만 밖에 나가기는 더더욱 싫고, 배달 음식도 지긋지긋할 때. 그런 날이 있지.


하루에 세 번, 냉장고를 뒤질 때마다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해. 그저 뭐든 먹을 것을 입에 넣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었던 시대가 그리 오래된 과거라고는 할 수 없는데.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입에 맞는 것, 맞지 않는 것을 지독하게 가리다 못해 온갖 복잡한 방법으로 맛의 극치를 추구하는 미식이라는 경지까지 개척하게 된 걸까.


감자 한 알만으로 한 끼의 양식을 삼으며 기뻐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이제는 감자를 삶고 찌고 볶아서, 또다시 체에 내리고 온갖 부재료를 섞어 예쁘게 빚은 다음 다시 튀겨내고… 이렇게 2차, 3차적 조리를 통해 복합적인 맛을 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요리든 뭐든, 어느 분야나 요즘은 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본질을 다루는 방식과 겹과 결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 서로 대척을 이루어 각자의 미학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각자의 철학이 있고, 방법론이 있으며 옹호자가 있겠지.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야. 내가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의 문제지.

엄마처럼 박쥐가 되어 양 진영을 바쁘게 들락거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야.

감자 바구니에 넣어두는 감자 두 알을 꺼내면서 참 별생각을 다 했네.


감자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참 많아. 감자가 주재료가 되는 요리도 있고, 부재료가 되는 요리도 있고. 특별히 호불호가 크게 없는 카레를 만들어볼까 해. 음, 카레에 넣는 감자를 주재료로 삼는 사람도 있고 부재료로 삼는 사람도 있지만 엄마는 사실 있으면 넣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감자의 녹말이 카레의 전반적인 맛에 공헌하는 부분이 있으니, 작은 크기로 하나나 두 개 정도는 넣어도 괜찮지. 아, 오해할까 봐 강조하자면 감자가 특별히 무슨 맛을 추가하거나 하는 건 아니야. 그보다는 카레의 질감을 통일해 주는 역할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보다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료는 양파. 양파를 큰 걸로 하나를 통째로 썰어 넣을 정도로 잔뜩 넣는데, 기름에 느긋하게 오래 볶는 거야. 캐러멜라이즈라고 하는 과정, 그거 말이지. 짙은 갈색이 날 정도로 오래 볶아. 가스레인지 앞에 제법 오래 서 있어야 해서 인내심도 시간도 적잖이 요구하지만 그만한 맛으로 보답할 거야.


고기는,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원하는 것으로 넣어도 돼. 갑자기 우스운 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가급적이면 해물은 삼가도록!


엄마가 버리지 않았으니 분명 집안 어디에 있긴 할 건데…「요츠바랑!」 기억나? 거기에 보면, 옆집의 후카가 해물 카레가 맛있다고 하니까 요츠바와 요츠바 아빠가 카레에 해물 따위를 넣다니, 하고 극대노(까진 아니었지만)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그건 뭐랄까… 카레 근본주의자의 분노 같았어. 물론 너희는 전위적인 입맛이 아니니까 그런 실험적인 요리는 안 할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혹시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


여하간 그렇게 양파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잘 볶아졌으면, 이제 고기와 토막토막 썰어놓은 감자, 그리고 뭐… 원한다면 당근 조금, 양송이 등등의 부재료를 조금 더 넣어주고 끓이도록 할까. 아, 물론 카레 루 roux도 잊지 말고 넣어 주어야지.


취향에 따라 우유를 두어 스푼 넣으면 아주 부드러운 카레가 되고, 사과를 1/4 정도 갈아 넣어도 돼(엽기적인 맛이 날 것 같지만, 아니야. 아주 맛있어져). 혹은 간장 1스푼 정도를 첨가해도 괜찮지. 엄마는 가끔 하야시 루를 조금 쪼개 넣어서 섞기도 하는데, 그것도 맛있어.


참, 여기서 카레 루라고 하는 건,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고체형 카레 있지? 그걸 말하는 거야. 한 제품보다는, 흔히 두어 개를 섞어서 자기만의 카레 맛을 내는 사람들이 많단다(이건 아주 나중에 알게 됐어). 너희가 진짜 엄마가 뭘 썼는지 너무 궁금해할까 봐 미리 말해주자면 엄마는 주로 골든 카레의 단맛과 매운맛을 조금씩 섞어서 썼어.


아, 이것도 썰이 있는데. 엄마가 어릴 때(는 아닌가) 봤던 작품 중에서 이런 장면이 초반에 나오는 게 있어. 돌아가신 엄마가 만들어 주던 카레 맛을 그리워하던 남학생이(정확히는 자기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면 아버지가 배다른 누나를 집에 들이지 않지 않겠느냐 생각하며) 하루 종일 부엌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마침내 카레 루를 두 종류 섞어야만 그 맛이 나는 거였다, 고 말하면서 펑펑 우는 장면이 나오거든. 그 작품을 보고도 한참 뒤에야 엄마 손으로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는데도 그게 머릿속에 각인이 됐는지 무조건 카레 루는 두 종류를 사게 되더라고.


와, 오늘은 말이 좀 많이 길어졌다. 어쨌든 카레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놓고 먹기에는 딱 좋은 음식이라서 엄마들이 애용하는 메뉴인데, 집 떠나 사는 독립 초년생들에게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 늘 파이팅이야, 오늘도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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