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따뜻하고 배부른 브로콜리 수프
지난 주말은 제법 추웠어, 그렇지, 삼남매야. 다행히 오늘부터는 다시 조금씩 따뜻해진대. 만발한 개나리와 목련을 만날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아. 매일같이 같은 장소를 산책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거든.
어젠 노란 산수유가 여기저기 몽글몽글 맺혀있는 걸 봤어. 산수유 봉오리가 가지마다 맺힌 게 꼭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가득한 유치원 앞마당 같더라. 산수유는 모양도 동글동글하게 올망졸망한 것이 정말로 어린아이들을 꼭 닮았거든. 아주 귀엽지.
다른 계절에도 제철 재료는 많고도 많은데 이상하게 봄에만 꼭 아, 봄이 왔으니 이걸 먹어야지. 저걸 먹어야지. 이렇게 생각나는 재료들이 있어. 뭐, 유채라든가 냉이, 쑥… 그런 것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은 브로콜리냐고? 그러게.
사실 브로콜리도 아직 맛있을 때야. 얘도 겨울에 단맛이 올라와서 맛이 더 좋아지는 채소거든. 근데 브로콜리는 한식에는 응용하기가 좀 어려운 재료지. 어른들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드시는 것도 좋아하지만(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그 어른 연배에 들어가는군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는 기분) 엄마는 그건 그냥 그래. 초장은 물미역… 아니 이건 지금은 됐고. 아무튼 브로콜리 하면 수프란 말이야, 엄마한테는.
브로콜리 수프를 만들기 전에 일단 브로콜리를 잘 목욕시켜 주자. 음, 얘는 씻는다기보다 정말로 목욕시켜 주는 기분으로 씻어야 해. 왜냐하면 저 촘촘하고 동그스름하니 탄탄하고 예쁜 봉오리 안에 불법거주자들이 집도 지어놓고, 뭐 아무튼 살림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거든. 그러니까 소금을 아주 조금 탄 물에 10분 이상 좀 담가 두도록 하자. 마트에서 사 온 그대로 풍덩 담그지 말고, 과도로 봉오리 바로 아래 줄기를 가닥가닥 잘라서 덩어리를 조금 해체해 준 다음에 담그는 게 좋아. 그렇다고 세월아 네월아 담가두진 말고, 적당히 건져서 또 꼼꼼하게 헹궈준 다음 물기를 빼고 봉오리는 비슷한 크기로 쪼개주고, 줄기는 적당히(조리법에서 가장 지양해야 할 단어가 바로 이 적당히지만, 적당히 말고 적당히(오 마이…) 어울리는 단어를 정말이지 찾기 어려운 이 현실…) 썰어두고.
이젠 양파 반 개 정도를 썰어줄까. 뭐, 감자를 적당히 썰어서 준비해도 괜찮아. 올리브유에 양파와 다듬어둔 브로콜리를 넣어서 볶아주자. 그리고 여기에서 두 가지의 옵션이 있는데, 엄마는 그냥 냄비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간편한 쪽을 가르쳐 줄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이 일 자체가 종종 성가시기 짝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부엌 초년생인 너희는 오죽하겠니….
여기에 버터 한 스푼, 그리고 동량의 밀가루를 넣고 약불에서 같이 볶아보자.
재료가 엉기는 느낌이 들지? 양파는 충분히 힘을 잃어서 흐물흐물해지고. 조각냈던 브로콜리의 색이 조금 진해졌다면 이제 수프의 본바탕이 되어줄 생크림과 육수(스톡)를 붓도록 하자. 물론 조금의 가당도 되어 있지 않은 생크림을 말하는 거야. 우유도 괜찮아.
엄마는 개인적으로 생크림과 육수의 비율을 1:2 정도로 맞춘 걸 선호하지만, 이건 진짜 개인의 취향 문제라서 정답이 없다고 봐. 어떤 사람은 우유만 넣는 것도 봤거든.
만약, 만의 만의 하나 닭 육수나 소고기 육수가 있다면 그걸 넣어주면 좋겠지만 없으면 그냥 물 부어도 괜찮아. 우유나 생크림이 가진 본연의 고소한 맛이 어느 정도는 커버해 줄 테니까.
지니는 지금도 종종 요리할 때 치킨스톡을 별도로 구비해 놓고 애용하니까 어쩐지 집에 갖춰두고 살 것 같지만 선이나 준이는 절대 아닐 것 같거든… 아무튼 그냥 물만으로도 안될 건 없어(강조했듯 유크림이 들어가니까). 그냥 조금의 감칠맛이 빠질 뿐이고 단지 그것뿐이어서 맛이 살짝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건강에 더 좋다는 정신 승리로 스스로를 위무하도록 하자. 오케이. 훌륭하다.
이렇게 재료가 다 들어갔다면 이젠 중약불에서 뭉근히 끓여주는 일과 재료를 잘 갈아주는 일이 남았지.
블렌더로만 갈아주면 브로콜리 송이의 톡톡 튀는 식감이 조금은 남을 수 있어. 한번 푹 끓여낸 수프를 충분히 식혀서 믹서기에 곱게 갈아주면 그때 비로소 시판 수프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브로콜리 수프가 되거든. 여기에 체다치즈를 넣어서 한번 살짝 더 끓여도 되고, 치즈는 빼고 크루통을 얹어도 되고 크래커를 대충 부숴서 올려도 돼. 엄마는 마늘칩을 올려서 대충 해결했지만. 아무튼 뭘 올려 먹어도 대충 다 잘 어울린단 뜻이기도 해.
가끔은 이렇게 귀찮게 간단히(?) 점심을 때우기도 하는 거지.
남은 것은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바쁜 아침에 살짝 데워서 먹을 수도 있는 거고. 꽤 괜찮지 않아? 약간의 수고로움을 더해서 오늘도 기분 좋게 잘 먹고 (아무튼 배가 고프면 화가 난다니까), 즐거운 하루 보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