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아, 알겠지

회복을 바라며 만들게 되는 그냥 보통의 불고기

by 담화

안녕, 선아, 진아, 준아.


이렇게 적어두고 안녕이라는 글자를 한참 쳐다봤어. 안녕安寧. 뜻으로 보면 편안하고 또 편안한지를 거듭 묻는 다정한 말이지. 어떻게 지내고 있니. 무탈하니. 별일 없지?

흔하고 가벼운 이 인사말이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는지, 간절한 바람이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체험했던 한 주였다. 그렇지?


늘 그렇듯 또 가벼운 빈혈이겠거니 생각하고 찾아갔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피검사 결과지를 꺼내 놓은 채 지었던 심려 가득한 표정과, 상급병원, 무슨무슨 검사, 수치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명을 듣는 동안 엄마의 머리는 한순간 텅 비었다가 순식간에 온갖 생각으로 꽉 차기를 반복했어. 사이로 시야는 빛이 들어왔다 나갔다 얼마나 정신없이 깜빡이던지.


태어났을 때부터 많이 예민하고 허약한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어서. 평온하게만 보이는 일상 곳곳에도 지옥으로 순식간에 빠져버릴 수 있는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며칠간이었지.


불행 중 다행으로,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어도 그래도 걱정하던 최악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다리가 풀리던 기분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그렇게 걱정과 불안의 한가운데를 건너던 사이에 집에 왔던 선이는 집을 떠나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왜 하필 이런 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건지. 그게 삶의 법칙인 건지.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겠는데, 그렇다고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 그래서 부엌으로 갔어.

혼자 살면서부터 위염과 장염으로 번갈아 고생해서 뭘 먹는 게 무섭다는 선이에게 이건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따뜻하게 데운 봄동 된장국에 밥을 두 숟가락 넣어주면서 속는 셈 치고 먹어보라고 했지. 훌쩍거리면서 숟가락질을 하는 선이를 두고 냉장고를 열었어. 무얼 해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국그릇을 비운 선이가 코끝이 빨개져서 엄마, 진짜 괜찮아졌어,라고 말했지.


엄마 평생에 이렇게 공들여 요리를 해본 일이 있었을까 싶더라. 한꺼번에 십수 명의 손님 대접을 해봤을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지. 온갖 것을 다 만들었어. 입맛도 체력도 완전히 잃은 진이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식탁 가득 넘쳐나는 반찬을 보면 그중 하나는 먹고 싶은 게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 노력을 보답받은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성의를 봐서 억지로 입에 밀어 넣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십몇 년 전에, 엄마가 목숨을 내건 수술을 받고 한동안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을 때 며칠에 한 번씩 새 반찬을 해서 보내던 할머니 생각이 들더라.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절로 알게 되었어.

왜일까, 할머니도 그러셨는데, 엄마도 당연한 것처럼 그냥 일단은 불고기를 재우고 있는 거 있지.


학교 앞에서 혼자 사는 선이에게도 보내주고, 진이에게도 한 번은 있는 그대로 불고기로 볶아 주고, 어떤 날은 규동으로 해 주고, 또 어떤 날은 잘게 다져서 유부초밥 안에 넣어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으로는 차가운 고기를 야무지게 양념에다 버무리고 있었지.



불고기는 어려운 음식은 아니야.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요리에 응용할 수도 있고, 냉동해서 조금 길게 보관할 수도 있으니 잘 배워 놓으면 요긴하긴 해.


고기 100g당 간장이 1스푼이 되게 넣는다고 생각하면 딱 좋아. 엄마도 옛날에 그렇게 배웠거든. 설탕은 간장 양에 비례해서 1:0.5, 아무리 많아도 0.7 정도. 동량으로 넣으면, 엄마 입맛엔 너무 달아서 싫더라고. 아니면 설탕 대신 조청이나 양파청, 사과청 같은 걸 넣으면 더 좋긴 해. 맛도 있고. 그리고 마늘도 넉넉히 다져서 넣어주고, 양파와 파도 채 썰어 넣고. 버섯이나 뭐 다른 채소는, 입맛대로 넣어도 좋고 안 넣어도 좋은데 기본은 파/마늘/양파까지만 챙기면 좋을 것 같아.

양파는 약간의 수분을 보충해 주면서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주니까 넣는 게 좋고. 마지막으로 후추도 조금 뿌려준 다음 잘 버무려서 좀 재워두기로 하자. 아무리 못 해도… 10분 이상. 물론 급할 땐 그냥 해도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냥 고기에 양념이 좀 덜 밴 불고기를 먹게 되는 것뿐이지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는 없어. 그리고 아무리 1인 가구라도 해도, 최소 300g 이상을 한 번에 준비하는 게 좋아. 음식이란 게 그래. 한 번 준비해 두고 소분해 놓으면 나름 편리하기도 하고.


아 참, 중요한 거. 가끔 연육 용도로 파인애플이나 키위를 갈아 넣기도 하는데 이건 불고기처럼 얇게 저며놓은 고기에는 절대 쓰지 않길 바라. 고기의 근섬유와 결합 조직의 단백질을 분해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거든. 그러니까 좀 질긴 부위를 요리할 때는 탁월한 선택이지만(물론 그것도 정도가 있지), 불고기 같은 용도의 요리에 넣었다가는 곤죽이 된 불고기 죽을 먹게 되는 아픔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이것도 굉장히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긴 한데 엄마가 오늘 가르쳐 준 건 아주 기본적인 조리법이라는 것만 참고해 주길 바라.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학교에 진료확인서와 조퇴계를 제출한 진이가 지금 막 현관을 들어오고 있네.


성인으로 독립시킨다는 게,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멀쩡히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어른으로 떠나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삼남매야, 부디 엄마가 이렇게 마음+몸 고생하는 거 유념해서 잘 먹고 건강하게 커서 아프지 좀 말고, 썩 괜찮은 어른이 되어주기를.

이전 09화귀찮은 품을 들여서 간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