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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Dec 21. 2023

자신의 세계를 가졌던 여자들

송은주, 드레스는 유니버스

책은 접근성이 좋다. 달리 말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가 작가가 마련해 둔 그 세계를 제대로 살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감히 빗대자면 오롯이 홀로 행간을 걷고 문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익숙한 비유의 가로등을 발견하고 안심하며 헤매던 길을 슬쩍 뒤돌아보는 것이 촘촘한 발자국을 남기는 독서의 모습이라면 패키지여행 같은 독서도 있는 법이다. 


혹은, 이렇게 썩 노련한 가이드를 따라 조심스럽게 나서는 여행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드레스는 유니버스 | 저자 송은주 | 출판 ㅁ(미음) | 발매 2023.10.25.



부제로 <고전 마니아가 사랑한 세기의 여주인공들>이라고 붙어 있어서,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생각했다. 고전 마니아와 여주인공, 그리고 타이틀의 드레스라는 키워드를 마음대로 조합하는 바람에 시대별로 고전 작품 여주인공들의 의상에 대해 쓴 책인가 짐작도 해보았는데 완벽하게 틀렸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기를, '책을 읽는다는 점과 더불어, 여덟 여주인공의 또 다른 공통 존재 조건은 그들의 드레스다. '드레스는 유니버스'라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의 제목도 이 점에 착안한 편집부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하는데, 솔직히 50% 정도로 '정말 그런가...' 싶은 의구심이 없지는 않다. 

아무튼, 제목에 대한 아쉬움과는 별도로 저자의 프로필을 보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상당수 번역하기도 한 분이어서 기대치는 조금 상승. 


+ '고등학생 때 바람피우다 망한 유부녀 얘기가 어째서 고전이라는 건지 인정할 수 없다는 친구와 입씨름을 한 적이 있다. 《마담 보바리》의 애독자로서 참을 수 없는 도발이었지만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 왜냐하면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았으니까. 안 읽은 사람을 설득할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마담 보바리》를 읽어보았으면 알겠지만, 그 소설은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건 나쁘건, 옳건 그르건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문학적 탐구인 것이다'라는 문단을 발견하면서 내가 책을 제대로 골랐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조그만 방에 불이 딸깍 켜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 씨익 웃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게 바로 굳이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는 이유 아니겠는가. 

(물론 조금 전에, 완전히 다른 성격의 글을 쓰고 온 주제에 진지한 척 본격 문학에 대한 책의 감상을 쓰고 있으니 약간의 자아분열이 일어나는 기분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 


책을 읽었던 여자들이, 자신만의 세계와 가치관을 가졌던 여자들이 그들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음은 당연한 결과다. 책을 읽는 사람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조금 더 높은, 넓은 이상을 그릴 수밖에 없으니까. 책이란 건 그런 이상향을 그리게 하는 힘이 있는 '문' 이니까. 내가 머무르고 있는 어딘가 각박하고 빈한한 세계보다 더 너그럽고 풍요로운 곳. 내게 더 많은 가능성을 허락하는 곳. 눈에 보이는데, 실존하는 세상처럼 뚜렷하게 들여다보이는 그곳으로 나가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욕망이 그곳에선 실현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는데, 한번쯤 그 문을 돌려 열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물론 그 가치관의 옳고 그름을 이곳에서 따지지 말자. 현실과 가능성의 세계의 무게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입바른 소리도 잠시 넣어두자. 우리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분명 그럴 수 있는 순간을 한번쯤 맞이할 수도 있으니까. 그 순간을 어찌 판단할지는 당연히도 각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전의 여주인공은 모두 여덟 명이다. 에마 보바리, 제인 에어, 엘리너 대시우도, 데이지 페이 뷰캐넌, 캐리 마덴다, 엘렌 올렌스카, 블랑쉬 드보아, 테레즈 데케루. 아마 익숙한 이름도 있고 낯선 이름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그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인간사의 한 진실이, 갈등이, 어찌할 수 없는 실패를 우리는 어쩌면 책으로만 만날 수도, 현실로 겪어낼 수도 있다. 인생사의 힘겨움을 우리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간접 학습하고 공감하고 지나갈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행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에도 예방과 예습은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고전을 읽자(여보세요, 좀 전엔 웹소설 추천하는 글(다음 주 책장담화에서 공개됩니다 ㅎㅎ) 쓰고 왔잖아요. 말이 왜 달라요. ~(>_<。)\).


언어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그것과는 비슷한 듯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한다. 내 말은 내 마음을 온전히 다 전하지 못하고 항상 전하고자 했던 목표를 비껴간다. 그러나 비껴간 말이 떨어진 자리에서 다른 세계가 태어난다. 빗나간 말들은 항상 또 다른 가능한 세계들을 증식시키는 힘이 된다. 그것이 어쩌면 시간이 흘러도 고전이 여전히 또 다른 이야기들의 시작점이 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p.15
개츠비를 한심한 몽상가라고 비웃을 수만은 없다. 대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돈키호테처럼 신성한 광기로 다른 세계의 희미한 가능성을 향해 돌진하는 자들이다. -p.119
먼 길을 가려면 짐을 줄여야만 하듯이, 인생의 한 시기들을 통과하면서 한때는 소중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남겨두고 가야 한다. 여기까지 와서는 큰 미련이나 회한 없이 그런 것들이 소중했던 때가 있었구나 하고 무심히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게 길에 두고 온 것들과 맞바꾼 것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은 하지 못하겠다. 단지,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 더는 그것들을 끌고 갈 수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뿐. -p.222

2023.12.21 최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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