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살뜰하다

다정하게 온 마음을 쏟아서 극진하게

by 담화

“진짜 바쁘다, 바빠.”


윤준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하진도, 수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어리광에 가까운 구시렁대는 소리를 받아 대거리할 정도의 여유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었다. 심지어 시즌 특수로 인해 크리스마스 전후의 3주간 임시로 채용한 알바생 한희도 굳게 입을 다문 채 포장에만 열중해 있었다.


“바빠도 각박하지는 말아야죠...”


시무룩해진 윤준이 스마트폰을 열어 음악 앱을 켰다. 직전까지 삭막하기 짝이 없던 공간이 순간 동화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캐럴 선율로 채워지며 효과음으로 들어간 핸드벨 소리까지 들리자 마침내 하진이 고개를 들고 피식 새는 웃음을 흘렸다.


“못 말리는 로맨티시스트네, 윤준이.”

“아, 뭐가요. 시즌이 왜 있는 건데요! 그맘때만 챙길 수 있는 분위기도 좀 내고, 멋도 좀 찾으면서 살자는 게 뭐 나빠요.”

“당연히 나쁘지 않지. 칭찬이야, 칭찬.”

“그럼 못 말린다는 말은 빼세요, 사장님. 누나. 그거 좀 빈정거리는 말로 들린다고요.”

“어, 그러네. 미안. 근데 바빠서, 네가 들은 귀에서 좀 꺼내서 지워주라.”

“뭐야, 그게!”


억울해하는 윤준의 목소리 뒤로 풋, 하고 미처 숨기지 못한 웃음소리가 샜다. 한희였다. 윤준이 짐짓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했다.


“이젠 막내까지 나를 비웃어...”

“아, 아닌데요. 비웃은 거 아니에요.”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의 첫해를 넘겨간다던 한희가 자못 억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손에는 충전재를 가득 움켜쥔 채였다. 내내 조용하던 수하가 한소리를 했다.


“자, 대화는 좋은데 손은 움직이면서 대화합시다.”

“형, 근데 왜 올해는 포인세티아 안 하고 이거 했어요?”


윤준이 뾰족뾰족한 톱니 같은 이파리를 달고 있는 산호수를 슬쩍 쓰다듬어 보며 물었다. 수하가 솜씨 좋게 포트 위의 상토를 페이퍼 타월로 덮으며 말했다.


“그게, 포인세티아가 예쁘긴 한데 미약한 독성이 있거든. 심각한 건 아닌데, 요즘 고양이 키우는 분들이 많잖아. 그래서 이왕이면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으면서 무해한 걸 찾는 분들이 꽤 계셔서 우리가 고민 많이 했어.”

“와, 섬세하시네요.”


한희가 끼어들어 눈을 빛냈다. 하진이 무심한 척 심드렁하게 말을 얹었다.


“한희 고양이 키우나 보구나?”

“네! 근데, 그럼 이건 괜찮은 거예요?”

“응. 근데 반대로 산호수가 종종 뜯어먹힐 위험성이 있긴 하더라.”


그렇게 말한 하진이 실실 웃으며 다시 빨갛고 하얀 방울을 종이봉투에 넣어 포장하는 일로 되돌아갔다. 한희가 하진이 포장해 둔 장식용 가랜드 garland를 윤준과 수하가 마무리해 둔 패키지 상품 박스 한쪽에 조심스레 밀어 넣고 테이프로 박스를 봉했다.


“엄청 힘들지?”


계속되는 반복 노동에 점점 표정을 잃어가던 한희 앞에 캔커피를 내려놓으며 수하가 웃었다. 한희가 캔커피를 게슴츠레 바라보다 말고 정말 마셔도 되는 거냐는 듯한 눈초리로 하진을 쳐다보았다. 윤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와, 너 벌써 여기의 권력구조를 다 파악했구나.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도 다 알고.”

“음... 제가 눈치는 좀 빠른 편인 것 같아요.”

“그럼 아무리 알바라도 시즌 특수라서 얼마나 힘들지는 진작 눈치챘을 텐데. 그런데도 온 거야? 용맹하네.”

“저 원래 여기 좋아했어요.”

“... 어?”


뜻밖의 대답에 윤준은 물론이고 수하와 하진까지 멍해졌다. 한희가 손끝으로 캔커피의 윗면을 둥글게 문지르며 주저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고객이었어요.”

“헐.”

“어머, 정말?”


가장 격하게 반응한 것은 하진이었다. 하진이 한 톤은 족히 올라간 음성으로 반문했다.


“우리 가게 좋아했어?”

“네. 시즌마다 출시하는 패키지나 세트도 되게 아이디어 좋다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다른 데서도 다들 시즌 상품 같은 거 하긴 하지만, 여긴 뭐랄까. 좀 더 깊이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생각에 성의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랬어?”

“네. 잘 표현은 못하겠는데, 아무튼... 뭐가 좀 달랐어요. 이런 거 있잖아요, 사장님이 지금 포장하시는 거, 동글동글한 펠트볼 달린 거.”

“아, 가랜드.”

“네, 그거.”


하진이 건네주는 빨갛고 하얀 펠트볼이 줄지어 엮인 가랜드를 만지작거리던 한희가 그것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거, 뭐랄까, 혼자 있는데 굳이 뭔가 기분 내려는 거 힘들고 번거로운데 또 그냥 넘어가자니 허전하고 좀 서럽고. 그런데 이런 작은 물건 하나로 되게 기분 달라지고 그렇잖아요. 근데 또 따로 돈 주고 사자니 애매하고.”

“응, 응.”

“그런 게 좋았어요. 그래서 매번 어떤 이벤트성 시즌이 되면 기대하고 그랬거든요. 식물도 좋긴 한데, 또 뭐 예쁜 걸 같이 하시려나 궁금도 하고. 그런데 크리스마스 시즌 알바 구한다는 공지 보고 직접 와서 돕고 싶었어요. 이런 다정한 기획이 만들어지는 현장에 있어 보고 싶기도 했고.”

“와보니 노동의 극치지?”


윤준이 산통 다 깨지는 말을 했음에도 한희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희가 천천히 덧붙였다.


“아뇨. 돈 받고 하는 일이어도 이렇게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표제어_살뜰하다/모티브_All-4-One 「Christmas」]

사진: UnsplashAnnie Spratt





지금부터는 약간의 사설입니다.

안녕하세요, 새삼스럽지만 담화입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제가 1주일 가까이 브런치를 쉬었는데요, 개인적으로 몹시 바쁘기도 했고 심각하게 아프기도 했습니다. 평소의 작업량도 만만치는 않은 편인데 앞으로 대략 2개월간 가히 파괴적인 분량의 작업량을 감당해야 하는지라(지인께서 미쳤냐며 한 해만 살고 말 거냐고 하시더군요...? -_-;;) 하지만 저는 사회인이고 계약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고 ㅋㅋㅋ 어쩔 수 없이 2월 말까지는 일주일에 엽편은 금요일 1편, 리뷰는 생각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올리게 될 것 같아요.


그래도 1주에 한 편이라도 쓰려고 하는 건, 무엇보다도 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잘 쓰건 못 쓰건 규칙적으로 쓰는 게 너무나 중요하니까요. 그에 못잖게 건강 관리도 중요하지만요. 그건 그렇고, 책장담화 시즌2https://brunch.co.kr/@chitchat-books를 시작했습니다. 저와 필화의 서신교환 책소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들러주세요!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행복한 2024년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고, 또한 2023년 마무리 잘 하시기를요. 감사합니다. ヾ(•ω•`)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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