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이고 번져나가게끔
“택배 왔던데, 최호.”
한 살 어린 혈육의 심드렁한 말에 호경도 더할 나위 없이 시큰둥한 말투로 대꾸했다.
“입 말고 손으로 전해주면 좀 좋나.”
“맨입으로?”
“니가 나한테 맨입 운운할 처지는 아니지 않냐.”
호경은 싸늘한 한 마디를 끝으로 백수나 다름없는 동생 최서경을 흘겨보곤 방을 쌩하니 나갔다. 방으로 갖다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현관 안에나 좀 들여놓지. 호경은 째릿하니 따스한 시선을 한 번 던진 후 제법 큰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온라인 식물상점에서 연말 특판상품으로 한정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패키지였다. 이름은 몰랐어도 그들이 이번 패키지의 메인으로 선정한 것은 여기저기서 많이 본 기억이 있는 식물이었다. 흔하긴 했어도, 연말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포인세티아나 율마가 아닌 것에 1차로 호경의 흥미가 동했고, 핸드메이드 데코 상품을 함께 패키지 판매한다는 것에 관심이 조금 더 갔다. 후기를 읽어보니 몇 년째 그곳에서 시즌 특판 상품을 반드시 구매한다는 고정 고객이 꽤 있었다.
기획도 제법 참신하거니와 수제작 한다는 그 상품들의 퀄리티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호평이 많았기에, 호경은 한 번 속아나 보겠다는 심정으로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 상품을 주문해 보았다. 주문내역 확인을 할 때, 호경은 자신이 주문했던 그 시즌 패키지에 이름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Little Red, in dreams, saw a snow-white lamb.
호경이 살짝 미간을 모았다. 어쩐지 입에 감기는 이름이었다. 왜인지는 영어 선생인 장민주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호경은 상품명이 떠 있는 화면을 찍어두었다.
불과 한 시간 뒤 완판되었다는 공지를 본 뒤에는 자신이 제법 운이 좋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오, 이건 기대 이상인데. 상자를 열고 산호수 화분을 먼저 꺼낸 호경은 그 식물이 뜻밖에도 제법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린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뜻 호랑가시나무를 연상시키는 톱니 같은 이파리와, 크리스마스 하면 누구나 곧잘 떠올리는 빨갛고 귀여운 열매.
빨간 봉투를 열어본 순간 호경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단단하게 뭉친, 선명한 빨간색과 하얀색의 펠트 볼들이 크기를 달리하여 리듬처럼 읽혔다. 그 가운데에 산타가 쓸 법한 고깔 형태의 빨간 모자 하나가 섞여서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
이걸 어디에 걸어두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호경이 흔히 다른 사람들이 그러듯 가로로 늘어지게 거는 것을 포기하고 빈 벽면 실크벽지에 핀을 걸어 고정시켰다. 겨우 작은 장식 하나였는데, 그것 하나가 하얀 벽면에 걸려 있다고 제법 흥겨운 분위기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이걸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들은, 이런 효과를 미리 예상했던 걸까. 혹은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기대하는, 약간은 불안하기도 한 마음이었을까. 호경은 궁금해졌다. 혹시라도 그에 관한 언급이 있을까 궁금해진 호경은 얼마 전 방문했던 온라인 스토어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가장 최상단의 로고 밑에 적힌 작은 문구를 발견했다.
_ 여러분의 삶에 생기가 번져나가도록 돕는 첫 번째의 녹빛이고 싶습니다
누가 국어 교사 아니랄까 봐, 호경이 혼잣말을 했다.
“다른 단어를 썼으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쉽다.”
[표제어_스미다/모티브_버지니아 울프 외「천천히, 스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