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예상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게 만드니까
마침내 종일반 아이들까지 모두 집에 돌아가자 하루종일 복닥거리는 소리가 꽉 메웠던 공간이 적요해졌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이정유는 텅 빈 교실을 한 번씩 들여다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공간에 무슨 생명이, 인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장소들은 그제야 기지개도 켜며 한숨 돌리기라도 하는 듯 한층 편안해 보였다.
“이선생, 뭐 해? 우리도 퇴근하자.”
강지희가 정유를 부르며 퇴근, 퇴근, 신나는 퇴근, 하고 마치 어린이날을 줄기차게 기다리는 아이처럼 흥얼거렸다. 그 모습이 꼭 그들을 하루종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는 아이들을 너무 닮아 있어서 정유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웃어?”
“강쌤 지금 너무 애들 같으셔서요. 하루종일 애들이랑 있으셔서 그런가 애들처럼 귀여우셨어요.”
“아, 그치. 내가 한 귀여움 하긴 하는데.”
낯빛 한 번 변하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지희를 보며 정유는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유가 눈꼬리에 달린 눈물을 찍어내며 중얼거렸다.
“와, 낮에는 이렇게 빵빵 터지지도 못하는데,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 본 거지.”
오랜만에 크게 웃어본다는 정유의 말에 지희가 눈썹 앞머리를 오그라뜨리며 의아하게 반문했다.
“왜 못 웃어?”
“어, 쌤한테는 애들이 안 그래요? 저는 조금 크게 웃기라도 하면 선생님 왜 웃어요? 뭐가 웃겨요? 난리가 나던데. 진짜 별 걸 다 궁금해하잖아요. 웃으면 왜 웃는지 안 웃으면 또 선생님 화났냐고, 웃을 때까지 계속 물어보고. 와, 저는 정말 여기 오고 나선 애들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말이 뭔지 완전 알아버렸다니까요.”
정유가 와다다다 말을 쏟아내자 지희가 풋 웃음을 터뜨리며 동네 아저씨들이나 칠 법한 포즈로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진짜다. 이러면 왜 이래요? 저러면 왜 저래요? 하여간 애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가 없어 정말. 다 이유가 있어야 돼.”
“그러니까요. 그것도 허무맹랑한 소리면 안 되고 나름 앞뒤가 맞는 말을 해야 납득해 준다니까요.”
“귀엽지 않아? 지들 나름의 타당성에 맞아떨어져야지 수긍을 한다니까. 태어난 지 많아봐야 이제 고작 네댓 살 밖에 안 된 쪼꼬미들이 뭘 안다고 저러나 싶은데 더 웃긴 건 진짜 뭘 알긴 안다니까.”
“맞아요, 맞아.”
지희가 자신이 맡은 6세 반 옆의 다목적실을 열고 겉옷을 꺼내오다 말고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또 까르르 웃었다. 이제는 웃음을 그치면 이야기해 주겠거니 생각하며 정유가 가만히 기다렸다. 겨울이 되면서 교사들이 두꺼운 코트나 패딩을 벗어 보관하는 용도로 쓰고 있는 다목적실 문을 닫으며 지희가 입을 열었다.
“있지, 이선생 오기 전에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인데,”
“네.”
뭔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아 정유가 눈을 반짝이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옷소매에 팔을 꿰며 지희가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영어쌤 오시는 날 있잖아.”
“네네.”
“그날 영어 뮤지컬 보여준다고 배우들도 오고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영어쌤이 눈치껏 나하고 5세 반 쌤하고 잠깐 쉬라고 내보내 줬거든. 그래서 우리 둘이 다목적실 들어와서 과자를 뜯었단 말야. 진짜 꿀맛이더라고, 그렇게 쉬어본 적이 없어서.”
“진짜 그랬을 것 같아요.”
정유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다른 직장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는 단 1분도 쉴 짬이 없다. 그런데 그런 깜짝 선물 같은 휴식시간이 주어졌으니 선생님들이 얼마나 좋았을지는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희의 목소리는 짐짓 심각해졌다.
“근데 갑자기 밖에서 우와아아악 우는 소리가 나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질겁했겠어. 6세 반 애들은 다 영어실에 있어야 될 시간인데!”
“그래서요?”
“... 세상에, 우리 반 미주였던 거 있지. 얘가 영어쌤이 담임쌤을 쫓아냈다고 생각하고 나를 찾으러 온 거였어. 근데, 바로 옆방 다목적실에서 우리가 문 닫아걸고 과자 봉지 까면서 시시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얘는 무슨 귀신같은 건 줄 알았던 거야. 애들은 그런 거 잘 믿잖아. 아무래도 문 하나 닫아걸고 소리가 이상하게 왜곡되어서는.”
“맙소사.”
“그 일 있고 나서는 우리 진짜 몇 달간을 선샘미 치사해! 소리를 듣고 살았어... 이선생, 진짜 새겨들어라. 애들은 진짜 알 수가 없어. 한 치 앞을 모른다니까? 뭘 상상하든 항상 내가 예상한 범주 바로 한 발 밖에서 움직이고 있어...”
그 말을 하는 지희의 표정은 어딘가 아련해 보였다.
[표제어_예측불허/모티브_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아프리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