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올리는 뒷이야기들
넵. 이 소녀의 근성 기질은 10% 정도는 제 성격의 반영입니다만 그러나 니나는 끝까지 파고들어 가서 답을 구하는 아이라면 저는 아몰랑, 귀찮아! 의 감정이 들면 에라이, 하면서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죠. 그렇게 잊고 살다가 불현듯 아, 그게 혹시 이건가? 하는 1/2 유레카적 순간이 오면 고마운 거고, 아님 할 수 없는 거고.
아님 말고- 가 저의 인생철학이라면 철학인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도’의 영역에서만 통용되어야 할 철학입니다. 뭔가 하나를 제대로 해내려면,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가장 마지막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어디 가서 내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내거는 것 같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던가요. 어찌나 공격적이고 매서운 반격이 되돌아오는지, 단순한 ‘반대’를 제발이지 ‘존재에 대한 부인’과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대화는 나와 다른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내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이미 견고한(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옹졸하다고 쓰고 싶었다) 자신의 세계를 한층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서 타인의 생각을 모조리 쳐낼 생각으로 말을 시작한다면, 차라리 글을 쓰세요. 해롭기는 매한가지이나 그래도 글이 낫습니다.
이렇게 은근한 배려심이 있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whenever, wherever, whoever, however 환영받을 만하죠. 지금 사는 집에서는 공간적 특이성으로 인해 식물을 거의 키우지 않습니다만, 한때 제가 살았던 집은 화원 같은 집으로 유명했습니다. 베란다엔 사철 꽃이 피었고 실제로 꽃향기가 가득했거든요.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요.
그 시절이 그리워서 만든 가상의 공간이 바로 이 꽃집이라지요. 이 화원엔 사실 예쁜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이 등장인물들로 썼던 다른 단편(을 언젠가 공개한다면...)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쯤에서 이실직고.
호경이 혼잣말로 했던, 다른 단어를 썼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가 바로 제가 표제어로 썼던 스미다입니다. 다들 아셨을 것 같지만요. 저는 스민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다른 언어로 이 낱말의 어감이 과연 옮겨질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영어에 있는 smear라는 단어가 품는 촉각적 감도는 ‘스미다’보다는 조금 강하지만, 그러나 그 부드러움의 감도는 몹시 흡사합니다(제가 느끼기엔요). ‘smear’와 ‘스미다’의 우연한 교집합. 살짝 스쳐 지나가며 두 단어가 살짝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풍경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실화가 60% 정도 섞여 들어갔다지요.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당혹해하셨을지, 한편으로는 아쉬워하셨을지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나요. 그게 무려 13년 전 이야기입니다. 유** 선생님, 이** 선생님, 죄송해요. 아이들이... 그렇죠, 뭐. 네...
이렇게 30까지의 짧은 이야기를 다시 묶었습니다! 내일 #31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