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확신하기엔 희미하고 불분명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박명이 깔린 바깥을 쳐다보고 있던 민주가 혼잣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는 막연히 나이를 먹으면 절로 알게 될 줄 알고 기다린 질문들이 있었다.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명쾌한 대답이 없었으므로 조숙한 민주는 저들도 모르는구나, 진즉에 알아차렸다. 답을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도움 될 것은 하나 없었으므로 민주는 기다리기로 했다. 어떤 궁금증은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해결되기도 하더라는, 10대에게도 나름 축적된 삶의 경험이랄지, 체득한 지혜랄지 하는 것이 있었으므로 민주는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0대 아이들을 매일 만나는 직업에 종사하는 어엿한 30대인 지금, 과연 그 질문에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씁쓸하게 자조한 민주는 무릎을 꿇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여몄다. 요즘은 원터치 다이얼인가 뭔가 해서 쉽게 조이고 푸는 장치가 달린 운동화가 유행이라곤 하지만, 민주는 성가시기까지 한 그 단순한 작업에 일종의 경건한 형식미까지 부여해서 하루의 루틴으로 끼워 넣은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의 마디라고 부를만한 행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규명해 주지는 못한다고 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믿는 것이 장민주였다. 그리고 어쩌면 무엇 무엇을 ‘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 이라는 미답의 땅에 언젠가 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견고히 짓는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 손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어떤 것이 보이기 시작하리라는 작은 믿음이 민주의 서른 해 넘는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추운 날씨였고 핑계를 대자면 수십 수백 가지도 댈 수 있었으나 민주는 늘 그랬듯 끈을 조인 뒤 앞코를 바닥에 톡톡 치며 팔을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이른 새벽만이 주는 특별한 감각을 민주는 좋아했다. 이를테면 차갑고 예민하게 얼어붙은 살얼음 같은 공기라든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청회색조의 새벽 풍경이라든가, 드문드문 보이는 부지런한 동류의 사람들 간에 주고받는 눈인사.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언젠가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둥치가 되어줄 거라 믿는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동류의식이다.
언젠가- 라는 가냘프고 연약한 믿음을 떠받치는 몸의 실천. 그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거듭되는 수행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연습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름을 달고 있건 그러한 실행이 희미한 바람을 현실로 이루어줄 가능성을 그나마 높여준다는 사실을, 기회가 된다면 오늘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민주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일단 해 보는 게 중요한 거지.
[표제어_어슴푸레하다/모티브_대니 샤피로 「계속쓰기 : 나의 단어로」]
사진: Unsplash의Sanni Sa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