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미루어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고

by 담화

“도대체 나이가 들면서 추해지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없는 거야?”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웃음기가 섞인 한탄조의 말에 내가 힐끔 곁눈질을 했다. 50대 초반일까, 아니면 40대 후반일까.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진 않았어도 그래도 벌써 저런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언니 말마따나 나는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며칠 전 퇴근하고 온 언니가 마치 활복해서 바닷가에 널어 말리는 오징어 같은 모양새로 널브러져서 하소연하던 게 생각났다. 유진아, 진짜 날이 갈수록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이게 해를 넘기면 진짜 느낌이 확 달라. 몸을 쓰면서 하는 일이어서 그런가 나의 노쇠함이 팍팍 체감되는 게 말도 못 하게 슬픈 거 있지. 나는 달리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가만히 쳐다만 보다가, 내 딴에는 진심 섞은 위로를 했다. 아냐 언니. 아직 언니 정도면 젊은데 뭘 그래. 그런데 언니는 그대로 퍼져 누운 채 흡사 가자미처럼 눈을 모아 나를 흘겨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래,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네가 뭘 알겠냐.

나는 왠지 억울했다. 아니, 나도 30대 중반이거든? 어디 가서 새파랗다는 수식어를 들을 나이는 아니라고! 내 반박을 듣자마자 빙글 몸을 돌려 모로 누운 언니가 들으란 듯이 쯧, 했다. 아니지, 새파랗다는 소리에 발끈하는 게 바로 아직 젊다는 증거지. 그건 그냥 언니만의 해석이잖아?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자 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피식 웃더니 미안, 오늘 힘들었나 봐. 별것도 아닌데 자꾸 감정적으로 되받게 되네. 하고 대뜸 사과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이상하게- 이런 걸 화두라고 하나, 하여간, 나이 듦에 대해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누는 노화에 대한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뭐지. 잘 못 먹는 건 또 뭔데. 나이도 잘못 먹으면 소화불량에라도 걸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유별나게 우리나라에선 점잖은 노인들을 크게 주목하곤 했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두 분의 노인이 대뜸 떠올랐다. 정갈하고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귀 기울이게 되는 말들을, 혹은 호탕하고 시원시원하게 삶의 경험을 풀어놓던 모습들이. 그분들의 가장 빛나는 시절의 성취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으려 했던 것도. 외모의 쇠락은 어쩔 수 없어도 한 사람이 긴 세월을 통해 쌓아 온 인품과 품위의 보정 효과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도둑질할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 한다고 해서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도대체 ‘추하다’는 서술어의 주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 아니, 알 것 같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인생이란 어찌 되었든 저울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하나를 놓치는 대신 다른 것을 얻어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믿으면, 그런 북극성 같은 믿음이 있으면 제법 괜찮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불현듯 지나치게 오래 생각에 잠겨든 나 자신을 깨닫고 놀라 머그잔을 내려다보았다. 잔 바닥에 가라앉은 크림과 초콜릿 드리즐이, 처음 올려져 있을 때만큼 맛있어 보이지도,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제 천천히 나도 어떤 것들은 삶에서 덜어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잃어갈 것들이 비워낼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으면 좋을지를 슬슬 고민하면서 사는 것도 일종의 노후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표제어_미루어보다/모티브_하 정「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사진: UnsplashAli Kaz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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