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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an 29. 2024

노래에 얽힌 시간들, 노래가 머물렀던 공간들

이슬아, 아무튼, 노래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건대 살면서 가장 맞닥뜨리기 싫었던 일 중 탑쓰리에 꼽을 수 있는 일이었다, 노래하는 일은.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지금은 극단적으로 싫어하던 시기에 비해서는 제법 뻔뻔한 好 쪽으로 변절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배반과 배신의 연속이니라... 당연한 얘기지만, 가창 실력이 급상승했다거나 있는 줄도 몰랐던 노래 재능을 발굴했다던가 하는 그런 삼류 역전 드라마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나이가 지금껏 비워온 밥그릇 숫자만큼 쌓이다 보니 낯부끄러움에 비해 노래가 안겨주는 흥취랄까, 추억이랄까... 그런 것들이 조금 더 부피가 커지고 무거워졌을 따름이다. 얼굴이 한층 두꺼워지고 챙챙 거리던 목소리가 쬐금 가라앉은 것이 한몫했을지도.


       

아무튼, 노래 | 저자 이슬아 | 출판 위고 | 발매 2022.04.25.

        

『아무튼』 시리즈는 소재만 취향에 맞다면 무한히 심적 '좋아요'를 찍어 누르며 열광하기에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에세이 모음집인데, '노래'가 한 70% 소재취향저격에 성공했다면 '이슬아'라는 이름은 100% 흥행보증수표로 도장을 찍는 셈이다. 그러면, 책을 펼쳐봅시다!



목차에서도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챕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엇박적 인간과 정박적 인간>, <비문학적 노래방>, <노래를 본다는 것>, <노래와 함께 오래된 사람이 된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소제목을 단 글들이 먼저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나는 미스매치인듯한 단어들을 조합해 두고 그 낙차의 풍경을 감상하길 좋아하고, 무엇인가를 제가끔 정의하는 문장을 읽어나가면 즐거워지고, 삶의 궤적에 감수성을 더하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한편 가왕이 아닌 이들의 노래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뭔가를 못하는 방식 또한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놀라곤 한다. 어떤 사람의 못함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 -9쪽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으면 이 문장이 절대 예사로 읽히지 않는다... 는 스포일러일까?)



우리 할머니 향자는 이틀에 한 번씩 만취하는 남편을 지긋지긋해하며 중얼거렸다. "지랄." 그러고는 <천년 바위>를 부르기 시작했다. (...) 그러나 향자는 한 번도 집을 떠나지 않았고 노래 교실에도 십 년 넘게 출석했다. 수영이든 요가든 한번 시작하면 십 년 넘게 다녔고 툭하면 술 취하는 남편과도 육십 년을 거뜬히 함께 살았다. -18쪽
그러나 향자는 어느 대화 중에도 "지랄" 한마디를 치고 들어올 줄 알았고 빨리 걸으면서도 결코 넘어지는 법이 없었고 갑자기 마이크가 쥐어져도 긴장하지 않았다. 정박을 잘 타는 사람이 엇박을 못 탈 수는 있어도 엇박을 잘 타는 사람이 정박을 못 탈 수는 없었다. 엇박적인 사람이란 정박과 엇박 모두를 가지고 노는 이를 뜻했다. 향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노래 교실의 다크호스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22쪽


이슬아 작가의 할머니가 이런 분이어서, 이 삶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간단히 요약되어 있지만, 그 삶의 대역폭은 읽는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일 것이다. 그 일상을 달래주고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던 건, 여러 개의 꾸밈음표였겠지. 그러니까... 이를테면 "지랄" 같은 꾸밈음이라든가, 다크호스적인 트릴 같은 노래 실력 같은 것 말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눈을 붙드는 글을 쓸 수는 없다. 하물며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기억창고를 뒤지게 하는 글은 더더욱이다. 작가도 그랬겠지만 나도 이 책을 읽다 보니 한 시절의 나를 대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노래들의 목록이 떠올랐다. 어느 때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쓱 내밀 수 있는 목록을 여러 개 가진 사람은... 어딘가 멋이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긴 리스트를 갖진 못했다.


대신 그 시기를, 내가 특히 아끼고 추종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자동재생하도록 방아쇠를 당겨주는 추억의 이름들은 여전히 말할 수 있다. ... ... ... ... ... ... ... (너무 연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삭제 처리. ㅋㅋ)이 이름들을 적어가며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임머신을 만들 줄 안다. 크리스토퍼 놀런처럼 거창한 상상력과 막대한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 노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노래를 유심히 반복해서 들으며 한 시절을 보낸다면, 그 시간과 뗄 수 없는 BGM으로 흐르게 한다면, 노래는 그 자체로 타임머신이 된다. -81쪽


여기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직 그 감성을 모르는 젊음은 좋겠네, 좋겠어...



(사실) 지금껏 가장 많이, 오래 노래를 불러 본 시기는 한때 친했던 PC통신 동호회 친구들과 매일같이 출퇴근부를 찍었던 노래방 죽순이(그렇게 인생을 낭비해 본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 지 않은가요) 시절이 아니라, 2006년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아이들(plural s에 주의)을 키우던 때였다. 당시 구입했었던 동요 CD 2종의 수록곡을, 순서대로 다 외워 연속으로 라이브로 재생 -_- 하는 게 일도 아니었더랬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평생 노래할 수 있는 목청을 그때 다 써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니까. 도대체가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엄마가 노래해 주는 걸 좋아하더라. 물론 명실상부 틴에이저가 되신 지금으로 말하자면, 2호는 "아 엄마 또 뭐 그런 옛날노래를 불러" 타박을 하고 (간혹 입에 붙어버린 동요를 부르면 되게 싸한 표정이 된다), 옛날엔 다 외워 부르던 어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고 있으면 "아놔 우리 엄마 찐오타쿠 인증" 소리나 하고...


하지만, 좀 놀아보신 1호는 아카펠라로 탬버린 및 기타 특수음향효과를 뿌려주기도 한단 말이지. 그러다 흥이 나면 나는 모르는, 저들끼리 아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같이 부르며  어깨를 들썩거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추다가 갖은 파이팅 포즈를 날리고... 훗날 또 이렇게 같이 노래하고 놀았던 추억이 되겠지. 노래는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양식이 된다. 그러니, 저축하는 셈 치시고 옆에 있는 누군가와  노래 한 번 불러보시기를.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을 스쳐 지나간 기분들을 갈무리해 몇 문장도 끼적여 두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최초작성_ 2022. 10. 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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