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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r 13. 2024

SF 작가로 생존하기 위하여

김초엽, 책과 우연들

블로그에서 한동안 자발적 거리두기를 한 이유에 대해서 굳이 이유를 적어두자면, 근 한 달 남짓 생애 최초로 거대한 규모의 도전을 했었고... 개인적으로는 나름 70% 정도의 만족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는 일을 벌였더랬다. 아무튼 뭐랄까, 그 덕분에 집안 꼴은 아주 엉망이 되었고 원래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HRM(이거 바로 떠오르는 당신 업계 분이시군요, 반가워요)은 당연히 더 관심이 없어졌다. 안 그래도 빈약한 인간관계는 어쩐지 두 손이면 다 헤아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 하는 그런 한 달을 보내는 바람에 블로그도 당연히 아웃오브안중. 


책도 필요한 자료가 아니면 들여다보지도 않았(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있는 책모임 과제책은 간신히 사수... ㅋㅋ)는데 이제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ㄹ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려고 다시 시간을 쪼개고 쪼개는 중인데 마침 시기가 연말이고 하니 뭔가 거국적으로 내년의 목표를 세우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책과 우연들 | 저자 김초엽 | 출판 열림원 | 발매 2022.09.23.


아무튼. 애니웨에이.


그래서, 사실 다른 책들도 안 읽은 건 아닌데 일단 뭔가 쓸거리가 생각나는 책부터 들이파야 기억이 오래 갈 것 같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읽어온 책들에 대해서 쓰는 글들은 본인이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해 온 책이라던가, 자신을 작가가 되게끔 문을 열어 준 책이라던가, 기타 등등등 뭔가 그런 sentiment와 연결고리가 굉장히 많은, 끈끈한 관계를 자랑하는 책들과의 인연에 대해 들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고 기억한다. 물론 안 그런 책들도 많았겠지만, 어쩐지 내 뇌내수납장에서는 그렇게 관리가 되고 있다. 


김초엽 작가의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다른 책들은 모조리 다 읽었는데 김초엽 작가를 스타덤에 올렸(다고 생각해요)던 바로 그 데뷔작, <우빛속>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어야 하는데 어째 여전히 아직 만날 기회를 잡지 못했어. 작가님 미안해요. 조만간 읽을게요. 이래서는 팬을 자처할 수 없... 워워.


그런데,


이 책은 작가의 독서 이력을 소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작가로서 생존하고 실존하기 위해 읽었던 책들, 읽어야 했던 책들을 더 중요하게 언급한다. 이런 독서 에세이는 흔치 않다. 특히 새싹작가로서 본인이 우왕좌왕하며 자신의 작가적 포지셔닝이라든가, 정체성 같은 것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독서로서 상당부분을 해결해 나간 분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SF 작가를 꿈꾸는 망생님이시라면 필독하시길 권하겠다. 


일단  SF 작가로서 참고할 만한 엄청나게 귀중한 레퍼런스가 가득하다. 게다가 그 책들의 간단한 요약 소개와 어떤 점에서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지, 별점을 매긴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별점표가 보일 것만 같은 착각이 절로 이는 친절한 텍스트의 향연속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저절로 이 말이 떠오를 것이다. 작가님, 상냥해... 


작가님도 본문 속에서 언급하신 책이지만 배명훈 작가님의 <SF 작가입니다>는 나도 읽어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역시나 여기서도 갑툭튀... 는 아니고 상당히 맥락있게 등장하는데 역시 이 책도 추천 한 번 더 꾹. 작법서 계열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보다 내게는 한국적 SF문학의 좌표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원래 SF를 그다지 안 좋아했는데 우리나라에 정말 대단한  SF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 바닥에 완전히 뼈를 (일부)묻은지라 여하간 이 위대하신 분들이 한국 SF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시작하시면 일단 경건하게 자리 깔고 무릎을 꿇는 1인으로서 닥치고 듣게 된다는 점은 좀 감안하시고 이 글을 봐주시길 바란다... 는 말은 앞에서 해야 했군요. 흠... 그치만 블로그는 좀 정신사납게 쓰는 게 미덕 아닐까... (응 아니야)



아무튼 뜬금없는 생존신고 글을 마치면서 장렬하게 한 마디 바칩니다. 김*엽 작가님 김*영 작가님 배*훈 작가님 사랑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재밌는 이야기 많이 써 주세요! 


거의 자정이었다. 가로등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 마음이 헬륨 풍선에 묶여 붕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좋은 무언가를 보고 나면 잠시 머리가 하얗게 된다 .해석이든 내용 곱씹기든 일단은 미루고, 당장의 좋은 감정 외에는 어떤 생각도 채워 넣기 싫은 그 기분.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일 아침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건 까맣게 잊고 실없는 생각이나 했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그 사람들은 뭘 먹고 살길래. -8쪽
지금도 나는 내가 밑천 없는 작가라고 느끼지만 예전만큼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이제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에 가깝게 느껴진다.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넓게 또는 깊이 알아가는 일, 세계를 확장하는 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쓰기의 여정에 포함된다. -42쪽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하고, 가슴 벅차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쓰고 싶은 나’를 새롭게 발견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내면 세계를 흔들어놓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채 떠나버리는 어떤 이야기들, 나는 이런 것을 쓰고 싶었지. 나는 성실하게 읽는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쓰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189쪽


최초작성_ 2022. 12. 27.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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