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이 에디터십을 장착해야 할 이유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by 담화

편집이라는 단어가 나를 처음 홀렸던 것은…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한참 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서가를 뒤져서 확인해 보니 무려 2000년 판이니 23년은 족히 묵었다. 그 책이 내 인생을 홀랑 뒤집어버린 단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를 떠안긴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 키워드란 바로 편집이고, 문제의 책은 마쓰오카 세이고가 쓴 「知의 편집공학」이다. 이 책도 강력히 권하고 싶은 책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개정판도 절판 상태인 듯하다.


편집을 말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개념이 존재한다. 분더카머wunderkammer.

기억으로는 이 이름을 붙인 편집샵이나 소품샵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명칭은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에서 유래한다(「분더카머」, 윤경희 저_이 책도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보석 같이 빛나는 문장들이 귀한 책이다). 분더카머야말로 편집자적 센스가 빛나는 공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분더카머까지 가지 않더라도, 직업적 에디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같이 편집을 하며 살아간다.

SNS의 그 작은 공간에 욱여넣을 이미지를 어떻게 촬영할지, 문장을 어느 정도의 길이로 자를지. 정기결제하는 이모티콘 플러스의 바다에서 내 기분을 딱 맞게 전달하는 이모지를 골라 무슨 말을 붙일지를(내 얘기다). 그러나 보기에 좋은 것을 넘어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의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는지 없는지가, 즉 에디터쉽editorship의 존재 유무가 우리를 에디터와 에디터 아닌 자로 가른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전문 에디터가 아닌데? 보는 사람에게 뭘 전달하고 싶다는 그런 목적도 별로 없고. 그런데도 에디터스럽게 접근해야만 할까? 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질문.


44417064619.20231205085107.jpg 에디토리얼 씽킹 | 저자 최혜진 | 출판 터틀넥프레스 | 발매 2023.12.22.


최혜진 작가는 ‘그렇다’고 확신을 실어 답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준비하는 크리에이터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 문장이 온 세상이 잡지화되어가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믿는다. 에디팅은 이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다. 상품, 지식, 뉴스, 데이터, 브랜드, 콘텐츠 모두 현기증 날 정도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택과 주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는 일도 벅차다. 자신의 취향, 호기심, 판단력을 알고리즘에 외주 주거나 타인에 대한 모방으로 때우는 일이 빈번해진 이유다. 모든 것이 이미 이렇게 많은 세상이라면 그 안에서 어떻게 자기다움이나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16쪽


솔직하게 말해보자.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었거나 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만의 기록물을 만들고 나의 정체성을 또렷이 시대의 발자국 중 하나로 남기고 싶어서? 그것도 좋다. 하지만 대체로 이유는 엇비슷하지 않은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말하고 싶고 그렇구나, 네가 그런 사람이구나, 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서. 당연히 수익성에 대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지인 크리에이터들(내가 보기엔 부러운 수준의 유튜버부터 제페토에서 실제 판매도 하는 의상 디자이너, 웹소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별사람 다 있다)을 보면 ‘돈’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보다, 돈이 안 되어도 그 일이 너무 좋아서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 일이 자신이 사회적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거기에 에디터적 감각과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 콘텐츠를 본 사람이 마지막에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품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도 자주 던진다. 어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이 콘텐츠를 보길 원하는가?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거나 영상 재생을 멈출 때 그들에게 어떤 감정이 남기를 바라는가? -130쪽
마케터가 ‘팔리든 말든 나는 상관없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에디터는 ‘당신이 의미 있다고 보든 말든 나는 상관없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한다. 에디터는 어떻게든 관여하고 설득한다. 끝끝내 소통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에디터 업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221쪽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권한다. 적어도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소통’을 원하지 ‘불통’을 원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2024.3.20 최초작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SF 작가로 생존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