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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da Apr 18. 2023

아름다운 된장국 한 그릇

음식은 여러 가지 기억을 함께 먹는 일

"세원, 맛있어?"


오늘 저녁 메뉴는 낫토비빔밥. 넓은 그릇에 갓 지은 밥을 담는다. 낫토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밥 위에 올린다. 작년 12월 어린이집에서 다 같이 김장한, 한껏 맛이 오른 김치를 씻어서 쫑쫑 썰고, 새콤달콤한 짭짤이대저토마토와 어린잎채소를 조금 올린 후 프라이한 달걀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간장을 쪼르륵 부어주면 끝. 세원에게 완성된 그릇을 보여준 후 비벼주면 김에 싸서 10분 안에 다 먹는다. 그 작은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맛있게 먹는다. 늘 나는 "맛있어?" 묻는다.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장난감 따위는 식탁에 올려두지 않는 최애 메뉴다. 나는 여기에 청양고추, 생고추냉이를 크게 쭉 짜서 먹는다.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세원이를 보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를 때가 있다. 진심으로.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나의 딸 세원이는 무엇을 먹는 것일까? 4살의 아이가 진정 '맛'을 알까? 아이가 좋아하는 책, <콩은 멀리뛰기 선수>에서 본 다양한 콩들, 4월이면 늘 같이 하는 완두콩 다듬기, 지난여름 서해안 바닷가에 놀러 가 잡아 본 명주조개, 숲속놀이터에 가면 나무에 매달아 놓은 도토리저금통에 주워 담은 도토리들, 늘 가는 빵집에 들러 가게 앞 벤치에서 몇 조각 먹는 치아바타, 하원길에 들른 마트에서 함께 장 봐온 재료들... 이런 경험들을 품고 있는 아이는 아마도 어떤 익숙한 기억들과 함께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먹는 게 아닐까.


나의 최애 메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된장국이다. 어릴 적 일주일에 세네 번은 된장국을 먹었다.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언제든 환영했다. 엄마의 된장국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데, 알뜰살뜰한 엄마가 계절별로 끓여내어 주시던 된장국이 내 입맛의 본질을 만들었다. 엄마의 기본재료는 다시마멸치육수에 양파, 다진 마늘, 감자, 애호박, 표고버섯, 두부, 대파. 여기에 계절별로 추가되는 식재료가 있다. 봄의 된장국에는 다듬을 때부터 식욕을 자극하는 향긋한 냉이, 여름의 된장국은 반드시 땡초와 잎의 끝부분이 약간의 보랏빛을 띠고 있는 방아이파리를 넣어주셨다. 방아잎은 일종의 허브인데 독특한 향 때문에 마치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향이 되어버렸다. 가을의 된장국에는 제철 꽃게를, 겨울의 된장국은 기본재료들을 넣고 푹 끓여 뜨근한 그릇에 한가득 담아주셨다. 그리고 체하거나 속이 안 좋을 때에 된장차를 마셨다. 된장차는 외할머니께서 처음 내게 만들어주셨다. 병원에 입원한 막둥이 병간호로 엄마가 한 달 동안 부재했을 때, 외할머니께서 부산에 내려오셨다. 학교를 마치고 배가 아파 누워있는데, 이 된장차를 끓여주셨다. 물을 끓여 된장 한수푼을 넣고 저어서 마신다. 그럼 속이 편안해진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 중에서 꽤 농하고 된 느낌을 가진, 연한 황금색부터 진한 밤색까지 다양한 색을 지닌 된장. 이 된장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너머의 기억 때문이다.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어 가족들과 함께 먹을 된장국을 끓이는, 어찌 보면 지난할 법도 한 이 일이 행복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된장의 아름다움은 내 어린 시절, 엄마가 뒷모습을 보이며 부엌에서 된장국을 끓이던 풍경의 아름다움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이 식습관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가장 큰 부분은 육류에 대한 거부감인데, 이건 현재 내 건강상태나 피로도 같은 것과 관련이 있을까. 점점 냄새를 강하게 느끼고 먹을 때에도 조금 예민해진다. 갓난아기를 키울 때는 모든 감각들이 마치 야생의 날 것처럼 살아나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훨씬 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예민한 감각들로 때로는 피곤하다. 음식은 어떤 지표일까? 식욕이 본능의 일종이기 때문일까. 물음표 가득한 엄마의 일상이지만 아름다운 된장국 한 그릇이라면 아직도 여전히 마음을 기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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