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마흔한 번의 여름을 살아냈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린 시간을 어떻게든 잡아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혹은 어서어서 흘러가 버려 시간을 훅 뛰어넘고 싶기도 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런 기억을 떠올리는 내게 누군가가 웃으며 이리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건 둘 다 같은 마음이네!” 나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덧없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여름이야.”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들을 생각해 본다. 작디작은 아가의 눈빛과 미소, 맑은 하늘 한 조각, 고개 숙인 벼, 한순간의 진심 어림, 자기 자신만의 투쟁. 또 뭐가 있을까. 그럼 금세 사라지고 말 것들도 함께 떠올려본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유치하고 귀여운 표정, 바다 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 누군가 해 준 요리, 자신만의 삶에서 가장 빛나던 청춘, 날이 새면 흩어질 새벽빛의 꿈...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의 내가 유독 많이 했던 상념 중 하나는, 친구들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와중에 헤어질 시간을 염려한다는 점이었다. 문득 속으로 슬퍼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았다.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이 그친다. 그래서 어떤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기세 가득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만남 뒤엔 후유증 같은 것이 찾아와 꿈속을 헤맨다. 그 봄 같았던 시절의 나는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넘쳐나던 감정덩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꼭 맞는 일이라며 의심 한번 없이 일에 매진하던 때에는 오래도록 이 직업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노트에 적어두었고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어, (내 마음은)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거야, (이 일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어떤 셈도 없이 극렬히 7년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그 일을 버렸다. 6년 전 일이다.
오늘도 정성껏 된장국을 끓여 저녁 식탁에 내었다. 한 국자 더 먹을래, 말하면 대부분 아니, 라고 말하지만 늘 묻는다. 더 줄까?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엉덩이를 들더니, 더 먹을까, 일어나려 해서 기쁜 마음으로 손을 움직여 국그릇에 푹 담아 주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다섯 살 아이의 몸과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을 깜박이면 속눈썹에선 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아이를 정성껏 돌보면서 집안을 돌보고 나도 돌본다. 또 애호하는 것들-아웃 오브 아프리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남과 여, 러브어페어,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바닷마을 다이어리, 호프 갭, 이소라, 토이, 장윤주, 루시드폴... 반복하여 보고 듣는 일이 어쩐지 내게는 더 깊고 특별한 일이다. 천천히 즐긴다.
이제는 만남에서의 헤어짐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소중했던 만남을 하나의 선물로 여겨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건네준다. 그리고 6년이 흐르고 어쩌면 그 헛되고 허전하여 손 끝에 겨우 매달려 있던 시간이 내겐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헤어졌고, 버려버린 그 상태에서 나는 어떤 시간성을 견뎌냈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으로든 내가 지닌 천성으로 견뎌냈다. 나만 아는 나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실제로 누군가는 내게 삶을 낭비했다고 말했지만, 낭비했어도 괜찮아, 그래도 이제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 라고 속으로 답해 본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다시금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한다. 다만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지는 않는다. 이것이 어쩌면 ‘덧없음을 사랑하는 마음’ 이려나. 이 마음으로 덧없는 일들을 시간이 주는 호위를 받으며 고이 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