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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도 같은 이해

by brida

1.

우리 모임이 잠시 뜸한 사이 호흡이 긴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작년에 본 <나의 해방일지> 이후로 올해는 <비밀의 숲> 시즌 1(17년 6월), 3년의 텀을 둔 시즌 2(20년 8월)네요. 총 32부작을 1주일에 걸쳐 조금은 힘겹게 보았습니다. 힘겨웠던 이유는 드라마가 꽤 무겁고 진지하고, 드라마를 보는 중에 계엄령도 터졌기 때문이에요. 보신 분이 있을까요? 검찰과 경찰, 그 내부의 은폐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추적극입니다.

드라마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시즌 2 마지막 회에 등장한 윤세원(서부지검 사건과 과장)과 주인공 한여진(경찰청 경감)의 대화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윤세원은 2년 전 소풍을 간 아이를 잃게 됩니다. 유치원 차량의 교통사고로 아이가 불에 타 죽게 돼요. 그 차량버스는 거의 폐차 직전이었고 운행을 해서는 안되었는데, 버스회사 대표와 중계업자의 비리로 결국 많은 아이들이 죽고 다치게 돼요. 피의자들은 처벌이 미미하고. 윤세원은 교통사고의 전말을 파헤지며 서부지검 차장검사와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을요. 시즌 1에서 윤세원은 아무에게도 이해받거나 용서받지 못하고 마무리되는데, 3년 후 시즌 2 마지막 회에 윤세원이 수감된 곳에서 윤세원과 한여진이 만납니다. ‘아... 드리마가 이제 끝나가는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이 재회장면이 너무 좋았습니다.

한여진의 대사를 옮겨봅니다.


“전에, 윤 과장님 선택이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말씀드린 거, 그 생각은 지금도 그래요.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윤세원이라는 사람을 설명할 순 없겠죠.”


그 대사가 나를 잠시 탄복하게 만들었어요,

그렇지. 아이를 잃는 참담한 사건을 겪고 삶을 겨우 살아낼 때 윤세원 내부를 채운 감정들,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을 밀어붙이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을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나마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지.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설명할 수는, 없겠지.

시즌 1에서 마저 끝맺지 못한 윤세원을, 시즌 2 마지막 회에 등장시켜 시청자들이 다시금 이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작가(드라마 극본 이수연)의 따듯함과 섬세한 마음씨가 깊이 와닿았고 ‘사람’에 대해 ‘인간’에 대해 12월 내내 생각해 보았어요.


2.

그리고 며칠이 지나 12월 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문을 유튜브로 보았어요. 그리고 이어서 한국기자간담회가 진행되었는데, MBC 기자의 질문에 답한 한강의 말을 옮겨봅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인간의 삶은 복잡하다고 생각이 돼요. 복잡한 삶은 복잡한 대로 쓰고자 하거든요. 충돌이 있으면 충돌이 있는 대로 복합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같이 들여다보면서 쓰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뭔가 확신에 차 있거나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진 않죠. 어떤 내적 갈등이 있거나 고통받거나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거나 그런 인물들이 나온 것이죠. 그게 현실 속에 우리와 닮아있다고 생각이 되고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라는 말을 책모임에서도 자주 했지요. 문득 예지님의 말이 떠오르네요. “나중에 어느 날 제가 막 명품을 걸치고 다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 기준에서 그땐 좋았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썩 불편하고 또 어떤 순간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인간의 삶이 복잡하기 때문일 거예요. 이해하려는 노력 와중에도 오해해서 결국 관계가 무너져 버리기도 하고요. 복잡, 복합, 충돌, 양립불가능, 갈등, 모순... 이런 단어가 가진 의미들이 인간에겐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사람은 뭔가 확신에 찰 수 없고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유튜브 화면 속 한강 작가의 얼굴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주 아주 크게 숨 하나를 내쉬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이상야릇한 세상에서 자주 실패로 끝났던 사람을 이해해 보려던 노력, 다시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손을 내미는 마음, 하루 동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다정하려는 애씀을 내려놓지 말아야 해, 계속해서 해나가자 합니다.


3.

한겨레 신문에 이번 달부터 기재되는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독자의 사연을 받아 요조가 그 사연을 읽고 책을 처방해 주는 형식이네요. 첫 사연이 실렸는데, 제목은 ‘그 많은 살구 중 진짜 살구는 누구인가요?’입니다. 직장 생활 20년 차, 아빠 생활 15년 차로 살아가는 45살 중년 남성의 사연으로, 반백년 살아왔는데 앞으로 제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은 남은 반백년을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책처방이에요. 책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21세기 북스, 2021> 였습니다. 에세이예요. 기사의 몇 줄을 옮겨봅니다.


"이 책은 나라는 존재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타인에 따라 얼마든지 나뉠 수 있는 ‘분인’(dividu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재미있게도 살구님 역시 본인을 여러 분인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20년째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 살구, 열다섯 살 자녀를 둔 아버지 살구, 거의 매일 사우나하러 가는 마흔다섯 살 중년 남성 살구로요. 아마 지금 이 시각에도 다양한 살구가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겠지요. 살구님, 그 많은 살구 중 진짜 살구는 누구인가요? 그중 어떤 살구가 가장 ‘살구다운’ 가요?(...) 나라는 존재가 불변하며 하나뿐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얼마든지 여러 개로 나뉠 수 있는 존재라고 할 때, ‘나다움’이라는 말은 새삼 새로운 빛을 띱니다."


모두가 ‘나’라는, ‘나’는 아주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단 하나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되뇌었고 그중 좀 더 나 스스로도 좋아하고 지향하고자 하는 나를 더 많이 나타내며 살아가자고 생각했어요. 특히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좋은가, 무엇을 행할 때 힘들고 피곤하지만 보람을 느끼는가... 하는 것들이요. 그리고 다른 모습을 새로이 가지는 방법도 좋지만, 이제는 이미 내 안에 오래 머물렀던 나의 모습을 다시금 찾아내는 쪽으로요.


4.

12월에는 김혜진 소설가의 두 편의 장편소설 <경청>과 <딸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두 책 모두 무거운 내용의 소설이었는데 읽는 내내 호흡은 느렸지만 빠른 속도로 읽혔어요. 빠르게 읽혔고 멈춰서 생각하는 시점이 잦았다는 말이에요. 특히 <딸에 대하여>에는 동성연애를 하는 딸을 가진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가 나옵니다. 소설 마지막 말미에 이 엄마를 표현하는 문장이 나와요. 옮겨봅니다.


“여전히 내 안엔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내가 있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자신도, 기운도, 용기도 없다.”


이런 상태에 놓여진 엄마가 있구나... 엄마와 그녀의 딸과 딸의 동성 연인에 대해 한 번쯤 이해해 보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줍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83년생 작가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구나.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주 갖게 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잘 써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현재까지 살아가면서 깨닫고 느낀 것만을 시대의 감각을 갖고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말’에서 ‘돌아보면 소설을 쓴다는 핑계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을 쓰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주 잠깐씩만 다정해질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하지 않나요? 시간이 되시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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