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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기의 노래에 담긴 나의 장면

by brida

매주 화요일 10~12시 글로벌도서관 강좌를 듣는다. 세원이랑 같이 그릭요거트+키위+귤+그래놀라+꿀 조합으로 먹고 한살림 달걀도 삶아서 즐겁게 나눠 먹었다. 삶은 달걀에 소금, 후추, 나는 거기에 카옌페퍼를 뿌려 먹는데, 갓 삶은 달걀을 너무 좋아하고 잘 먹는다. 그리고 한살림 시나노골드 사과도 땅콩버터랑 먹었네! 이번에 산 시나노골드가 진짜 너무 새콤 달콤 상큼 맛있는데 이제 한 알 남았다. 귀한 맛.


등원하고 나는 도서관. 매번 수업이 시작되면 조금 늦는 수강생을 기다릴 겸 한주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강좌에서 흘러나온 작품들은 보았는지, 혹은 일상에 대한. 나는 지난주 작품들은 복습하지 못해서, 무슨 이야기할까 하다가 시를 하나 읽어도 괜찮을까요? 아주 짧아요. 하고 싱겁지만 시를 읊었다.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짧은 가을, 햇살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하고 인사했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 끝난 뒤, 그간의 습기를 없애줄 귀한 가을의 볕...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사실 전율했다.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몇 개의 문장으로 어떤 아우라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신기함!'으로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들의 몇 장면이 소환됐는데 23살 해인사 원당암 가는 길, 따듯한 햇살이 잔디를 감싸고 나는 잔디밭에 반쯤 누워 눈을 감고 양방언의 swan yard 반복해서 들었던 장면. 직장일이 괴로워 두문불출하다 집 앞 성내천을 걸을 힘을 내어서 더벅더벅 걷다가 희미한 햇살 한 줌 받아 들고 좀 더 걸어보자 했던 장면. 남편과 연애할 때 추운 겨울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다가 돌담에 서서 따스한 햇살을 눈을 감고 바라보며 '아.. 따듯해'하고 말했는데, 너무 오래 그러고 있으니 그가 그만하고 이제 가자 그랬던 장면. 얼굴에 햇빛이 내릴 때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던 때는 어떤 의미로 견디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으로도 견뎌야 하니까. 가야 할 길이나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를 때 그저 견디는 시간을 보내는 일...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더 이상 슬프거나 괴롭거나 하지 않는 지금에 와서는 아... 그래, 회복의 시간을 보냈던 거구나 3개의 문장으로 된 이 시를 읽으면서 사무치게 알게 되었다. 시는 곧 노래이니... 회복기의 노래...


수업을 마치고 사각사각책방에 갔다. 의왕시블로그로 알게 된 동네책방. 모락산 자락 아래 평온해 보이는 2층집의 1층은 식당, 2층에 책방이 있었다.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장소. 편안히 대해주셨던 책방지기, 20만 원 넘게 책을 사가신 어떤 여성분, 건네준 따뜻한 돌배차, 갖가지 필기도구, 필사한 공책들, 안쪽으로 들인 모임 공간, 김소연 시인과 김연수 소설가가 다녀간 흔적, 책방으로 이어진 옥상의 모과나무 감나무, 테이블 위 가지 친 대봉감, 시간이 쌓인 나무벤치, 깨끗하고 맑은 겨울의 공기가 아주 살짝 느껴졌던 대기. 책구경으로 2시간이 훌쩍 지나 4권의 책을 구입하고 인사 나누고 세원이 하원하러 집으로 왔다. 놀이터에서 1시간 반 놀다가 일찍 퇴근해 걸어서 온 남편과 집 앞 치킨집에서 다 같이 치킨 먹고 귀가. <나는 소고기입니다> 책을 읽어주고 소고기를 보고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원이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8시 반 꿈나라로-


모두 깊은 밤 평온한 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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