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나날들
많이 많이 말했다. 나는 양력으로 8월 18일에 태어난 한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필이면 여름의 한가운데 태어나 땀을 많이 흘리던 갓난아기를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씻어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쪼그려 앉아 대야에 물을 받고 아기를 안으면 꽉 찼다던 좁은 부엌에서 나를 씻겼다. 여름에도 갓 물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늘 보송보송 말갛고 깨끗했겠지. 엄마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나는 여전히 지금도 보드랗고 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또 햇빛 없는 회색빛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그래도 다행히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 꽤 시원이 바람이 불어든다. 지난 토요일엔 사촌 가족과 한강 수영장에 다녀왔다. 작년보다 철저해진 수영장 요원들의 관리 덕분에 깨끗했지만,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공간에 음식물을 반입하지 못하게 해서 간식으로 챙겨간 음식들을 먹지 못해 아쉬웠다. 편의점이 있지만 대부분이 기름지고 튀긴 음식들... 이른 아침 6시에 일어나 찰옥수수를 쪄서 들고 갔는데 집에 오니 딱딱해져 버려 얼른 냉동실로 넣었다. 그래도 날씨는 아주 환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과 뜨거운 태양. 도심의 아스팔트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5분만 걸어도 숨이 막히겠지만 넓은 한강 변에서 수영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날씨였다. 나는 이런 여름다운 여름이 좋더라. 잠실 공원에서 올해 첫 매미소리를 들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나는 시를 끈다
숨겨져 있던 다른 소리를 얻기 위해서
손바닥을 열어 저문 빛을 받는다
낱장이 되어 도착하는 황금빛의 시간이 손바닥 위에 놓인다
김소연, 「기록적인 폭염」, 『문학과 사회』, 여름호, 2025. 中
소연시인의 두 편의 새 시를 읽기 위해 『문학과 사회』 여름호를 구매했다. (내가 시인을 진짜 좋아하나 보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들떠서 두근거렸다.) 올여름이 그나마 덜 덥다던데, 내년은 더 덥겠지... 내년은 그나마 그다음 해보다는 덜 덥다던데, 후 내년은 또 얼마나 더울까... 117년 만의 폭염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그냥 매년이 기록적인 무더위다.
새 시, 「기록적인 폭염」은 폭염의 여름날, '나'와 '고양이'가 서로를 켜가면서 대신, 시는 끄고서 며칠의 날들의 단상을 적어놓은 시 같다. 덥지만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소리도 듣고, 차를 마시고, 윗집의 층간소음이 들려오고, 그러다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엄마 생각도 하고, 희미해져 어느새 끊어진 소리를 작고 둥근 6개의 점을 볼록하게 돌출되도록 만든 문장으로 남겨도 본다. 손으로 더듬어 만진다. '주옥 같은 시들 / 안녕 잘가 / 그동안 고마웠다' (덕분에 나는 '점자세상'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담과 벽은 이제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
여긴 물맛이 약간 짭조름하다 그게 좋아 여기서 살기로 한다
햇볕에 손등을 구워 한입 베어 문다
김소연, 「기록적인 폭염」, 『문학과 사회』, 여름호, 2025. 中
무더운 여름날, 시인은 시를 끄고서 시 아닌 다른 감각들을 모아보는 것 같다. 마치 그의 별명이었던 '잠잠이'처럼. 그러다 아직 한 번도 감각해보지 못했던 곳으로 담과 벽을 넘어 살아도 보는 것 아닐까. 이 시를 읽고 한참이 지났는데 더위가 한풀 지나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