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척』을 읽고
세원아
어제-오늘 엄마는 『최척』이라는 짧은 소설을 읽었어. 이 책의 머리말은 '영은이, 도병이에게'라는 편지글로 김소연 시인이 두 아이에게 쓴 편지로 대신하고 있단다. 어쩐지 엄마도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져 아주 오랜만에 노트에 몇 글자 적었지.
세원아. 엄마는 김소연 시인을 아주 좋아해. 이 분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소연 시인이 쓴 책들과 관련된 글들을 읽고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평생 살아가는 데에 한가득 지혜를 얻고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야. 이 책은 아주아주 오래전 17세기에 살았던 사람이 쓴 글을 소연 시인이 다듬어 다시 쓴 소설인데, 책도 예쁘고 안에 들어있는 그림도 좋아. 요즘 출간되는 책처럼 감각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예스러운 멋이 있어. 아마 너도 차차 알게 될 거야.
『최척』은 최척이라는 인물과 그의 아내 옥영(玉英)에 관한 아름답고 눈물겨운 옛이야기야. '옥영'이란 이름이 예쁘다. 세원이 이모의 이름에 옥(玉) 자가 있고, 엄마의 이름에 영(英) 자를 합한 이름이네! 옥구슬과 꽃부리. '꽃부리 영'은 꽃잎 전체를 일컫는 말과 뛰어나다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어. 꽃잎 전체를 지칭하는 자연적 의미와 꽃의 화려함에서 우수하고 뛰어남을 표현하지.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평범하고도 멋진 '지영'이라는 엄마 이름이 새삼스레 참 좋다. 네가 가끔씩 '지영아~ 지영아~"하고 엄마를 부르잖니? 귀여운 녀석.
세원이라는 이름도 아주 넓고 깊은 이름이야. 세상 세, 둥글 원. 굳이 뜻을 풀어내지 않아도 모든 것을 품어내는 이름이다, 그지?
엄마는 네 이름이 가진 중성적인 느낌도 좋더라. 너도 네 이름을 많이 사랑해 주길-
요즘 세원이는 자기 전에 이렇게 말해.
"엄마, 나는 이야기 작가도 되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도 되고 싶어."
"그래? 엄마는 다 좋아. 엄마는 그냥 세원이가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럼, 다정한 의사 선생님이 될래."
책 속의 문장처럼 '인생이란 아침 이슬처럼 짧은 것'이라, 금방 성인이 된 세원이를 마주 할 텐데...
과연 어떤 잎들을 펼쳐내며 살아나갈지 아주 기대되고 궁금해. 세원이 곁에서 엄마는 늘 비슷하게, 놓여 있을 것이고.
'옥영'이라는 여자는 아주 용기 있고 멋진 사람으로 나와.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줄 알고, 힘든 상황과 위기를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 나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줄 아는, 소설 속 주인공답게 모든 용기를 갖춘 여자지. 자신의 반려자를 스스로의 뜻으로 선택할 줄 알고, 방 안에 앉아 생각만 하기보다는, 끝내 '움직이는' 몸으로 모든 일을 겪어내는 대범함도 있어.
세원아.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엄마는 좀 우유부단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설득당하며 환경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이었어. 겨우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 엄마의 타고난 기질 중에 동굴로 들어가려는 면이 있어. 어떤 일에 당차게 맞서지 못하고 숨어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순간을 건너가려 했던 나약했던 사람...
엄마가 계속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뭘까? 앞으로는 또 어떤 '내'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또 세원이를 낳은 엄마이자 한 여성으로서 또 다른 나를 꿈꿔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야. 식물들도 완전히 죽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새로운 잎을 피워내니까. 그렇지? 끝내 화려한 꽃을 피워내기도 하지만 무수한 푸른 잎들은 어떤 식물이든 자라나니까 말이야.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게 한 일은 널 세상에 낳은 일-
덕분에 책과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어.
네가 초등학생쯤 되면 이 『최척』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너는 '옥영'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참, 이 책 첫 장에 접혀있는 지도가 있어.
'17세기 아시아 : 최척과 옥영네의 발걸음이 닿았던 아시아 이곳저곳'이라고 적혀 있어. 대한민국(조선)-일본-중국-베트남이 그려져 있구나. 세원이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를- 늘 너의 편에 서서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게.
너의 작고 작은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