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뭘까? 세월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늙게 만드는 걸까?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물었다.
그러게 엄마...
엄마도 늙었어.
아마도 핸드폰 화면을 거울삼아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말씀하시는 거겠지.
엄마는 곱잖아. 엄마는 고와.
엄마가 뭐가 고와. 늙어서 좋은 건 정말 하나도, 하나도 없어.
마흔을 넘어선 나도 이젠엄마가 많이 늙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엄마는 곱다 말을 건넸다. 내게 엄마는 정말로 고우니까. 지금껏 단 한 번의 손찌검 없이, 나를 부를 땐 그 흔한 '야' 없이 꼭 내 이름 지영을 따듯한 목소리로, 혹은 조용한 목소리로 불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엄마는 다른 유별난 것 없이 나의 내면을 따듯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엄마,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거 있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 태양이 급히 떠올랐다가 또 그리 성급하게 지는 거야.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하면 '어머, 벌써 해가 떴네' 말하곤 했고, 낮엔 발을 동동 구르며 온갖 일들을 끝내고 '벌써 밤이네' 그랬잖아.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야. 하지만 어릴 땐 엄마도 그랬겠지. 외할아버지가 한창 노름할 때, 그때, 외할머니가 '가서 아부지 데리고 와' 그러면 엄마는 한참을 노름판 문 앞에서 아빠를 기다렸잖아. 그때는 시간이 정말 안 가지 않았어? 난 20대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라. 시간이 내 옆에 끝없이 머무르고만 있는 것 같았어. 흐르지 않고 도중에 멈추어버린 느낌... 엄마, 책에서 그러더라. '사람은 간혹 고개를 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잖아. 그런데 해는 저물 때에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대. 사람은 시간과 같이 움직이지 못하고 늘 늦다는 거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따르고, 그리고 어느 순간 뒤늦게 참회하듯 시간이 되어가기 시작한대. 인간에서 시간으로 서서히 탈바꿈되고 그러다 시간으로 가득 채워지면 인간을 멈춘다고'. 뭔가 섬뜩하고도 경이로워. 하지만 정말 그렇지 않아, 엄마?
우리는 모두 시간일까? 이 말에 동의한다면 마치 내 몸과 마음이 시간으로 이뤄져 있는 것 같다. 세원이가 내 몸에서 나왔을 때 간호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정세원 아기, 오전 10시에 태어났습니다! 흐릿한 정신에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 세원이가 내년 1월 13일이 되면 만 6세가 된다. 그리고... 2025년 10월 18일 새벽 2시 40분경, 친할머니께서 생을 마치셨다.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14년 만이다. 14년을 침상에 누워 때론 맑은 정신으로, 때론 멍하니, 때론 아파하며 서서히 시간으로, 완전히 탈바꿈되시기까지의 날들을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할 수가 없어서 나는 할머니께서 가시는 길에서도 보내주신 38만 원의 용돈을 쥐고서 할머니와의 몇 안 되는 추억을 되새겨 본다.
아주 어렸을 땐 할머니댁 산청 시골에서 설날을 보냈다. 옛 집. 너른 마당이 있고, 삐걱거리는 겨울의 차가운 마루가 있고 3개의 방이 나란히 있었다. 마당을 지나면 작은 사랑방이 있고, 사랑방에도 작은 아궁이가 딸려 있었다. 그리고 소나 돼지를 서너 마리쯤 길렀을 작은 우리가 방 옆에 있었다. 나는 지금도 불장난을 좋아한다. 펜션에 놀러 가면 모닥불을 장작을 다 쓸 때까지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피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사람만 볼 수 있는 사위지 않은 붉디붉은 숯을 오래오래 본다. 시간을 영원같이 느끼게 해주는 나만의 놀이다. 사촌동생과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 옆에서 작은 불씨를 만들었다. 마른 나뭇잎, 나뭇가지, 솔잎 같은 것을 주워다 불장난을 하고 쥐불놀이를 하면 끊임없이 일하시던 작은 몸의 할머니가 나타나 불 꺼, 그만해하고는 또 일을 하러 가셨다. 가장 큰 방에는 일곱 남매가 동그랗게 앉아 쑥떡을 손바닥만큼의 크기로 만들어 고물을 묻혔다. 할머니는 너무 크다, 좀 작게 만들어하시곤 작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떡을 빚으셨다. 어린 날의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보름 정도 할머니댁에 머물렀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고 집에 있으면 괴로워 찾아간 곳이 할머니 댁이었다. 늦여름이었고 사랑방 앞에 있는 작은 평상에 상을 펼쳐놓고 영어공부를 하다, 책을 보다, 친구 수연이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점심식사. 근처 밭에서 자그마한 둥근 호박을 따오시곤 숭덩숭덩 썰어 냄비에 넣고 아마도 국간장을 넣어 호박나물을 내어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지금도 호박나물을 만들 때 이 장면이 떠오르고 남편에게도 이야기하곤 한다. 또 식사를 하실 땐 젓가락을 쓰지 않으셨는데 숟가락의 머리 부분으로 밥과 국을 드시고 손잡이 쪽으로 반찬을 떠서 드셨던 장면이 생각이 난다. 비 오는 날에는 밭일을 할 수 없으셨던지 곡식을 널어두는 큰 선반을 지붕 삼아 그 아래 앉아 마늘을 까고 계셨다. 이것이 다 다. 이 몇 가지 기억 밖에 나는 갖고 있지 않고 나머지는 사진으로, 부모님이 가끔 들려주시는 이야기로 추억한다. 작은 체구에 뭐든 속도가 느리셨다던 할머니. 관 속의 반도 차지 않았다던 할머니의 작은 몸을 생각한다. 그 작은 몸으로 5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고 14명의 손주를 보셨다.
할머니의 발인 날, 아빠는 목놓아 우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리 슬퍼하는 아빠의 모습을 할아버지 장례식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아빠도 할머니와의 시간들이, 추억들이 떠오르셨겠지. 아니면 무작정 엄마가 그리우셨겠지. 옛 시절에 첫아들과 엄마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아빠에게 한 번도 물어보진 못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식은 늘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엄마의 내리사랑보다 자식이 가슴에 품는 사랑이 더 클 수도 있으니까. 늘 엄마의 사랑에 목마른 것이 자식이 아닐까. 언제나 어디서나 오로지 나의 편이 되어 날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영원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 할머니의 귀천을 애도하는 시간을 보낸다. 몇 안 되는 기억으로 할머니를 떠올리다 보면 뜻하지 않게 문득 새로운 추억이 생각나지 않을까 하면서. 생각나지 않아도 영정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의 동그마한 얼굴을 떠올린다.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버린 할머니께서 부디 편안히 하늘에 도착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