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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쳐라 남미! -9-

아르헨티나의 동대문, 아베샤네다에 가다.

by 대변인

https://brunch.co.kr/@briefing/11


<전편에 이어...>


그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본인의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민 간다고 떠나더니 관광만 하고 일은 대체 언제 하는 거지?라고 의구심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은... 나도 그랬다. 아르헨티나 도착 후 한 달 동안은 관광을 하면서 보내기로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탱자탱자 놀 수는 없었다. 이과수에서 돌아오는 대로 한인 교민들이 모여서 상권을 이루고 있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베샤네다 거리'를 찾아 떠나 보기로 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아르헨티나이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이과수 관광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한인사회 진입과 일자리를 위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아는 현지 교민이 있어야 얼굴이라도 보고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을 텐데 사람들 소개해 주기로 했던 학원 원장 선생님은 한국에 있고 아르헨티나에 딱히 연락이 되는 사람도 없었다.


고립


고립이라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지금쯤 한창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녀야 할 시기인데... 한국에 계신 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는데(제발 좀 도와달라고!!!) 페북 메시지함에 답장이 와있다. 이분은 내가 당신이 하나밖에 없는 믿는 구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졸라 야속하다.


아베샤네다에 내려서 한국인 가게를 가 보세요. 아베샤네다에 가서 'XXX 부동산'을 찾으세요. 거기서 내 소개로 현지 상황을 좀 알려달라 하세요. XXX 씨는 이민 1.5세대로 70년대부터 그곳에서 살아서 그곳 생활을 잘 알고 있어요. 아베샤네다 까지는 지하철이 없고 버스가 있을 거예요. 아르헨티나 한인 상조회 사이트에 들어가 'XXX 부동산' 전화번호를 찾아서 먼저 약속을 잡으세요. 내 이름을 대면 친절하게 알려 줄 거예요.

capture-20160520-163302.png 당시 나눈 페이스북 대화 내용


일단 교민들이 의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아베샤네다 거리(Avenida Avellaneda)를 가보기로 했다. 어떻게 생겨먹었고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는지는 알아야 비비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는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통정보 홈페이지(https://mapa.buenosaires.gob.ar)에서 대중교통 검색으로 어디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지 일단 검색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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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알려준 가는 방법을 아이폰으로 찍어 둔다. 현지 아르헨티나 심카드가 없어서 와이파이가 없으면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연결돼 있을 때 구글맵을 실행시켜서 지도 데이터를 받아두면 데이터, 와이파이가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GPS로 대략의 내 위치는 알 수 있었다. 예전부터 여행 다닐 때 나의 팁이라면 팁이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 없어도 지도는 충분히 쓴다.




DSC_0747.JPG 보에노스 아이레스 교통카드 SUBE

숙소에서 멀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그동안 지하철, 기차는 타봤어도 버스는 처음 타보는 것 같다. 버스 카드를 들고 버스에 올라서는데 앞서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기사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타는 것 같다. 그냥 타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차례가 오자 한국에서 처럼 버스 단말기에 카드를 대려고 하니 기사가 나에게 묻는다.


$^&%^*&^^%?


당황스럽게 갑자기 뭘 물어보고 그래?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나 같은 한국인은 듣기 평가에 최적화돼서 볼륨을 좀 키워줘야 잘 들린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버스 기사가 묻는 거라곤 어디까지 가냐는 거겠지... 생각하고 내리려는 정류장 주변을 말하니 요금을 찍어준다. 한국처럼 탈 때 찍고 내릴 때 찍으면 거리가 정산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탈 때 목적지를 말해서 요금을 찍는 시스템이다. 역시 말이 안 통하는 해외여행에서 눈치만 있어도 대강 어떻게든 된다. 버스를 타면서 보이는 차창밖의 풍경을 즐기면 좋겠지만 정거장 안내방송 따위는 없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전광판 같은 시스템도 없다.(하긴 대부분의 나라에서 없다) 아이폰 지도에서 움직이는 현재 위치를 보며 내가 얼마큼 왔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구비구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목적지인 아베샤네다 의류 시장 주변에 도착했다.


아베샤네다 거리(출처: 구글맵)
아베샤네다 거리(출처: 구글맵)


mapa-avellaneda.png 아베샤네다 상가 구역 (출처: http://classyandfabulous.com.ar)


사진과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아베샤네다의 의류 상가는 중심의 아베샤네다 거리를 기준으로 좌우로 펼쳐진 거대 의류 단지다. 주로 단층으로 상가가 이루어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동대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규모가 너무 커서 처음엔 몇 개 블록만 둘러만 보고 왔고 그 다음날 다시 아베샤네다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몇 개 블록을 둘러보다가 학원 원장님이 소개해준 부동산을 찾았다.


띵동


원장 선생님이 알려주신 분이 계실까 했지만 휴가기간이라 안 계신다고 했던 것 같다.(벌써 3년 전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다) 오는데만 한 시간 걸려서 왔는데 그렇다고 마냥 돌아가기도 그렇고 상가들을 마저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 교민들이 대부분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처럼 이곳저곳에서 한국인이 정말 많이 보인다. 큰 가게, 작은 가게, 대로변에 있는 가게, 구석에 있는 가게 할 것 없이 한국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떤 상가는 꼭 동대문 평화시장에 와있는 느낌도 든다. 나도 여기서 무언가를 하든가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다고 변하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상가 구석에서 분식을 팔고 있는 작은 가게의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정착하려면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어본 질문의 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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