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라비아!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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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나도 여기서 무언가를 하든가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다고 변하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상가 구석에서 분식을 팔고 있는 작은 가게의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정착하려면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어본 질문의 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한국에서 얼마 전에 혼자 아르헨티나에 왔는데요. 이야기만 듣고 처음 와봤는데 한국분들이 정말 많네요.
아줌마는 한국에서 혼자 왔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1. 아르헨티나에 가족이 있는가?
2. 아르헨티나에 친척이 있는가?
3. 아르헨티나에 친구가 있는가?
4. 결혼은 했는가?
뭐 내 글을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대답은 1. 아니오 2. 아니오. 3. 아니오 4. 아니오 로 언제나 소나무 같은 한결같음을 자랑했다.
앞으로 저 표정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수없이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것들이 이곳에서 정착하려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아주머니에게서 '일단 아르헨티나에 왔으니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하여튼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는 조언을 듣고 발길을 옮겼다.
결국 이 날도 아베샤네다 의류 상가 거리를 거닐다 주변 빵집에서 싸구려 빵을 몇 개 사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아르헨티나 교민사회를 알아가려고 하는 단계인데 전조가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숙소 침대에 누워서 이러 저런 생각을 해본다.
아...쌰ㅇ...안 풀리네...
이후 꾸준히 아베샤네다를 찾아갔지만 휴가기간과 여러 사정으로 처음 소개받았던 'XXX부동산'의 XXX 씨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모든 일이 이른바 '아다리'가 맞아야 되는 건데 한국을 떠나 프랑크 푸르트부터 일정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이게 풀릴 생각을 안 한다.(속으론 계속 c8c8c8c8c8c8c8c8c8c8c8c8c8 생각이 든다.)
그래... 아직은 알아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계획했던 사람들 몇 명 만나다 보면 슬슬 해결되겠지...
그렇지만 목적도 없이 시내에서 편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의류상가를 매일 찾아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딱히 앉아서 쉴 곳도 마땅치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돌아다녀봤자 돈만 쓰고 날씨도 여름이라 더운데 체력만 축내는 일 이었다. 그렇다고 숙소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것도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 교민들도 중요하지만 현지 사람들도 만나보면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아마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하늘이 아셨는지 다행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알고 있는 현지인 친구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예전에 잠시 호스텔에서 일했었는데 그 당시 한국과 K-POP이 좋아 한국을 찾은 아르헨티나 소녀들이 있었다. 다행히 이 대책 없는 손님들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되고 있었다.(가운데 계신 분을 중심으로 우측의 친구는 한 달 정도 한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갔다. 반면 좌측의 친구는 이후 한국에서 계속 불법체류(ㅡ.ㅡ;;)를 하며 지냈다. 그녀는 유치원, 호스텔 등에서 일하며 내가 아르헨티나에 와있는 시점까지 이년 넘게 한국에서 지내다가 혼자서 아이까지 낳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물론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사진 좌측의 노엘리아라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님아... 나 아르헨티나임! 여기 아는 사람 없음! 네 친구들 소개 좀 굽신굽신...
그러자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도 정신 나갔지만 너도 참) 정신 나간 님! 진짜 아르헨티나 가셨음? 친구들 몇 명 알려줄 테니 페북 친추 고고! 한국인이라면 친구들도 좋아할 거임!
페북 친구 파도타기를 타고 서울에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의 친구들을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국에선 거리마다 있는 것과 달리 시내 중심가 몇몇 곳에만 있는 스타벅스에서 현지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다. 어차피 나는 남는 게 시간이고 그 친구들은 일이 끝나고 올 테니 잠시 커피를 마시며 스페인어 공부에 빠져볼 작정이었다. 그래도 처음 만나 대화하는 아르헨티나 여성들인데 유창하게 이야기는 못해도 무식해 보여선 안될 것 아닌가? 한국보다 저렴한 아르헨티나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벤티를 시켜놓고 지적 호기심을 채워본다.
스타벅스 손님들을 둘러보며 이곳에 오기 전 기대했던 남미 여자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보려 안구를 꾸준히 움직였다. 솔직히 아르헨티나에 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한국에서 기대했던 남미 미녀들과 현지에서 본 이곳 여성들의 모습은 그 갭이 너무나 컸다. 스타벅스가 있는 이곳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지인데... 미녀들은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스타벅스에 앉아 '언론의 선별적 프레이밍에 따른 현실과의 온도차와 그 부작용'같은 석사는 안 먹힐 것 같고 신방과 학사 졸업논문쯤 되어 보이는 주제에 나를 투영시켜 본다.
잠시 후 카페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를 알아보고 반기는 아르헨티나 여자 3명!!! 이 나타났다. 이억만 리 타국에서 나를 반겨주는 현지인 여자들이라니! 정말 고맙기도 하면서도 잠시 '언론의 선별적 프레이밍에 따른 현실과의 온도차와 그 부작용'같은 석사는 안 먹힐 것 같고 신방과 학사 졸업논문쯤 되어 보이는 주제에 나를 다시 한번 투영시켜 본다.
그녀들은 K-POP은 물론 일본 문화 같은 동양 문화,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동양 사람들은 주로 현지의 자신들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활하기 때문에 만나기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방금 넘어온 따끈따끈한 신상(?) 남자라니 그들에게도 나란 존재는 신기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도 현지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든 일자리나 생존 정보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곳에서 마땅한 일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점점 더 커지는 듯하다. 다들 먹고 살기 쉽지는 않은 상황 같은데 그래도 우리처럼 우울해하거나 암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이런 게 남미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움이 아닐까?
대화가 종반으로 다다를 무렵 그녀들이 나에게 물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한국인이 주최하는 클럽 파티가 있는데 같이 갈래?
전 인류의 해방촌, 클럽 파티라니! 거기다가 한국인이 주최하는 클럽 파티라니!
유년시절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일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외치곤 했다.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