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물은 삼다수! 폭포는 이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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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불안한 마음에 배낭에 있던 여권을 빼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르헨티나에 올 때 할 수 있는 스페인어라고는
나는 돈이 없습니다! 나는 직업이 없습니다!
만 알고 왔는데 지금이라도 책을 펴서 '나는 아르헨티나를 사랑 하무니다!'라는 표현도 익혀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회사 때려치우고 남미까지 와서 셀프 빅엿을 먹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버스 주위를 배회하던 군인(?) 중 한 명이 버스 2층으로 올라왔다!
버스 내부에 적막감이 흐른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나도 왠지 모르게 몸이 위축됐다. 괜히 풍경 본다고 2층 맨 앞자리에 앉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층으로 올라온 군인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새꺄! 뭘 꼴아봐!'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빠사뽀르테!(Pasaporte)
군인이 나를 보고 외친다. (새꺄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먹는다!) 여권 좀 보자는 뜻이다.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군, 경, 공무원이 여권을 달라고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쫄게 된다. 무언가 트집을 잡을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영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트집 잡아서 한 시간 동안 조사받고 나오기도 하고...
잠시 내 여권을 보던 군인이 다시 여권을 돌려준다...(새꺄...나 깨끗하게 입국장으로 도장받고 들어온 사람이야!) 나머지 버스 승객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신분증 검사를 하기 시작한다.
설마... 이 사람들 중에 밀입국자나 테러리스트가 있는 것인가???
아무리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가 똥망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도 못 사는 볼리비아에서 넘어온 노동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건가? 짧은 검사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검사를 끝낸 군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스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버스 기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버스 2층으로 올라와 뭐라 뭐라 외치더니 다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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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로 뭔가 말을 하는데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기초적인 스페인어만 할 줄 알았지 상대방이 말을 해도 못 알아먹으니 완전 답답하다. 같이 버스에 타고 있던 좌석 건너편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Que Paso?(꿰 빠소?)
'무슨 일이야?'라는 스페인어다. 그런데 묻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스페인어로 물어볼 수는 있어도 대답을 못 알아듣는다. 그래도 이렇게 외국에 나왔을 때는 대답을 듣고 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예~' 하는 게 예의다. 각설하고 아저씨는 나에게 블라블라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꼬모?(Como? =What? = 뭐라고요?)
네 말 못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말해줘도 못 알아먹으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아저씨가 이번엔 좀 더 간단하게 말해준다.
수스펜시온!(suspensión)
아! 서스펜션!!! 그제야 모든 퍼즐이 조각처럼 맞춰진다. 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버스의 서스펜션이 고장 났다는 말이다. 처음에 버스 기사가 내려 소리를 지른 것은 조수와 서스펜션을 수리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고 그래서 대체 버스가 올 테니 갈아타라는 말인 것이다.(라고 추리를 해본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만 먹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남들 따라서 버스를 갈아타고 목적지 이과수에 도착했다.
오오!!! 이곳이 정녕 이과수 폭포란 말입니까!
물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물을 보면 기분이 좋다! 는 국내 모 교수의 발언도 있을 만큼 물의 힘은 위대하다.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아 루스벨트 여사가 이과수 폭포를 보고
Poor Niagara!(우리 나이아가라 폭포는 허접해서 우얄꼬...)
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올 만큼 이과수 폭포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국경에 걸쳐있는 초대형 폭포로 보통은 아르헨티나 쪽 하루, 브라질 쪽 하루 이런 식으로 관광을 한다. 이과수 폭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낮에도 보고 밤에도 보고 보트 타고도 보고 헬기 타고도 보고 해야 하지만 일정상 그럴 수는 없었고 이틀에 걸쳐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오가며 이과수를 구경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아마 평생토록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떠났기 때문에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나도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직장인 독자들이 있다면 과감히 회사를 때려치워라! 그리고 떠나라! 그러면 된다. 돌아와서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글이나 쓰고 있으면 주변에서 '미친놈! 그러게 왜 떠나서 저 모양으로 사냐?!'라고 손가락질받기 딱 좋다. 떠나라!
그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본인의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민 간다고 떠나더니 관광만 하고 일은 대체 언제 하는 거지?라고 의구심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실은... 나도 그랬다. 아르헨티나 도착 후 한 달 동안은 관광을 하면서 보내기로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탱자탱자 놀 수는 없었다. 이과수에서 돌아오는 대로 한인 교민들이 모여서 상권을 이루고 있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베쟈네다 거리'를 찾아 떠나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