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변인이 남기는 좌충우돌 남미 일자리 찾기
직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중간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은 윗사람이 시킬 일까지 생각해서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돌이켜보면 2010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2년 동안 재직했던 조선일보사에서 나는 일을 잘하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거국적으로 본다면 아마도 가장 후자, 즉 윗사람이 앞으로 시킬 일까지 생각해서 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대통령의 의중을 대통령 임기 초반 미리 예측하고 3년 전 이미 남미에서 청년 일자리를 찾기 위해 행동한 (아마도 세상에 나 같은 미친놈이 더 없다면) 유일무이한 선구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초 광화문 조선일보사 업무동, 재경국 앞 회의실
매주 월요일 아침 그동안 일하던 자재팀이 주간회의를 하던 이곳에 팀장과 팀의 막내인 내가 마주 앉았다.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팀장님, 저는 이제 회사를 그만둘 때인 것 같습니다.
팀장: 그냥 회사에 있는 게 낫지 않겠냐?
저는... 아무래도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팀장: 뭐 하려고?
아르헨티나를 갈까 합니다.
팀장: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냐?
아뇨, 계획은 일단 가서 찾아볼 생각인데요...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었다. 인수인계와 퇴사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팀 차원의 단출한 송별회가 치러졌다. 회사 선후배들에게 인사를 한 후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사원증을 인사팀에 반납했다. 인사팀장에게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직원이 아닌, 기자와 인터뷰할 수 있는 인터뷰이(interviewee)로 오겠다는 소회를 남기는 것으로 2013년 1월 31일 33살 나의 조선일보사 회사원 생활은 끝났다. 햇수로는 4년, 실재직기간 2년 동안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았던 조선일보 간판은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일주일 후 2013년 2월 7일, 그간 약 30개국을 여행하면서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 브라질과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국가, 리오넬 메시의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짐을 쌌다. 한국은 강추위의 겨울이었지만 18,000km 넘어 남반구 대척점은 여름인지라 여름옷 위주로 짐을 쌌다. 겨울옷은 그곳에서 필요하면 사입을 요량이었다.
가서 입을 옷, 세면도구, 맥북, 아이패드, 카메라, 충전기, 비상약, 정장 한벌... 정장... 혹시 잡인터뷰를 볼 지 모르니 가지고 가보자, 스페인어 문법책, 남미 스페인어 포켓북, 콘돔... 도 넣을까? 역시 남미는 열정적인 처자들이 많으니 가져가는 게 좋겠지? 아니야! 필요하면 현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사면되겠지... 패스!
앞으로 약 2년 간의 아르헨티나 생활을 책임질 물품들을 배낭 하나와 32인치 대형 트렁크에 나눠 담았다.
이제 잠시 후면 나는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무작정 일자릴 찾아볼 생각이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한국 교민들이 동대문 같은 큰 의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동대문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하고 계시니 몇 년 그곳에서 엉덩이를 비비다 보면 무언가 한국과 연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154곳의 회사를 광탈하고) 30살이 되어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볼 수도 없는 미지의 땅으로 떠난다니 영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말린다고 말을 들을 아이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내 배에서 낳은 자식인데 왜 이러냐고 나에게 묻는 다면 나도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어머니가 작은 종이쪽지를 주었다.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얼마 전 어머니 가게에 찾아온 아르헨티나 교포 손님 전화번호라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아르헨티나에 가니 혹시나 기회가 닿으면 조언이라도 전해주라고 했단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교포 손님의 자재분이 아르헨티나 공항에서 나를 픽업해 주기로 약속이 되었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집안을 한번 둘러본다.
언제쯤 이 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당분간 부모님, 이 집, 친구들, 익숙한 환경 모두를 볼 수 없다니...
잠시 감상에 젖었다.
'딩디딩디리리~ 디리리링'
집을 나서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를 보니 왠지 눈에 익은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대변인 나야'
조선일보 여직원 S선배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에 미술에 조예도 깊어 회사에서 전시 관련 업무를 도맡아 했던 선배다. 도시적인 외모에 패션도 좋고 자기관리도 잘하는데다 할 말도 앙칼지게 하는 이른바 '센 언니' 스타일의 여자였다. 이 여자가 내가 떠날 때가 되니 이제야 날 잡으려 하나...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화기에 입을 열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