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드디어 남미를 향해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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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딩디딩디리리~ 디리리링'
집을 나서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를 보니 왠지 눈에 익은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대변인 나야'
조선일보 여직원 S선배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에 미술에 조예도 깊어 회사에서 전시 관련 업무를 도맡아 했던 선배다. 도시적인 외모에 패션도 좋고 자기관리도 잘하는데다 할 말도 앙칼지게 하는 이른바 '센 언니' 스타일의 여자였다. 이 여자가 내가 떠날 때가 되니 이제야 날 잡으려 하나...
한편으로는 살짝 짜증도 났다. 이 여자 지금 뭐하자는 건가?! 아무리 자기가 자존심 세고 도도한 여자라도 그렇지 버티고 버티다 출국을 3~4시간 앞두고 전화해서 갑자기 고백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나는 이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떠나는 남자 가슴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겠다는 심보인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건가? 어쩌자는 건지 답 안 나오는 여자 구만... 등등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화기에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대변인! 아직 한국에 있는 거지?
네... 이제 공항버스 타러 나가야 돼요...
-......
S선배는 조금 뜸을 들이는 듯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참고 참다 용기를 내어 힘들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제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이라니 누구라도 그 허탈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으론 고백을 들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게 최선일까, 어차피 나는 몇 년 후에나 한국에 들어올 텐데 어떻게 하면 될까? 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짱구를 열심히 굴렸다.
-......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드디어 수화기 너머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변인 복지카드 사용금액 정산했는데 만원 초과 사용했더라고. 만원 돌려받아야 될 것 같아서...
......
음... 뭐지...? 만나고 싶다는 의미의 신개념 고백인가?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건가? 생각해 봤지만 그녀는 (부끄러운지) 그냥 돈만 어떻게 보내달라고 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사원들에게 매달 약 10만원 정도를 쓸 수 있는 복지카드(신용카드)를 지급했는데 그 카드의 월별 사용금액이 만원 넘어서 회수차 전화한 거였다. 꼼꼼한 사람들... 나는 딱 맞춰 쓴 줄 알았다. 궁시렁 궁시렁대며 스마트폰으로 급히 송금을 했다. 집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마루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집을 나섰다. 부모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또 혹시 아나? 내가 없으면 두 양반이 서로 좀 더 의지하며 화목하게 사실지도...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여행을 다녔고 여태까지 30개국 정도를 돌아봤지만 이번만큼 막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돌아오는 날짜, 시간까지 명확한 여행이었다면 이번엔 아무런 기약도 없으니까...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오늘 이후 나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잠시 혼자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답이 안 보인다.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늘 그랬던 것 같다. 두 번의 대학 편입, 취업 한 달 후 퇴사, 길거리에서 수제 핫도그 장사 및 타코야키 푸드트럭 운영, 보험설계사 그리고 조선일보 입사까지 어디 하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인천-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약 10시간 비행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3시간 정도 기다려 아르헨티나까지 다시 12시간을 비행하는 긴 비행 일정이다. 평소 해외를 나갈 때면 살게 없어도 면세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오늘은 쓸 돈도, 쇼핑에 대한 의욕도 없다. 똥이 살짝 마려운 것도 같은데 아마 기분탓이겠지... 아마도 한국에서의 마지막 사진이 아닐까 싶은 셀카를 탑승 게이트 앞에서 찍고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났다.
여태껏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왠지 센티해지는 기분이다. 탑승전 똥이 살짝 마려웠던 것도 아마 이 센티한 기분탓 아니었을까? 당시 '나는 7ㅏ수다'에서 박정현이 불러 큰 인기를 누리던 가왕 조용필의 노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 한 구절이 내 머릿속을 휘젓는다.
기분도 영 꿀꿀하니 아이폰 녹음기를 켜서 비행 중에 현재 소감을 짧게 남겨본다.
2013년 2월 7일 현재 시각 OO시 oo분 비행기는 XX 상공을 지나고 있다. 음...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아님 말고...
궁상 모드로 10시간 비행을 마치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루프트한자 항공의 메인 공항답게 공항에는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마크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오랜만에 와보는 유럽이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환승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탑승 게이트 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게이트 근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니 비행기에서 느꼈던 센티한 기분은 역시 똥이 마려워서였던 걸로 확인됐다. 공항은 화장실이 많아서 정말 좋다. 또한 대체적으로 도심의 화장실에 비해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되어있다. 다만 비데가 없다는 점은 정말 아쉽다. 나는 똥 싸고 비데로 뒤처리를 안 하면 찝찝한데... 하지만 앞으로는 비데 없는 삶에 적응해야만 할 것이다. 영차영차 으쌰으쌰 센티한 기분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조금 덜어내고 다시 게이트 앞 벤치에 앉았다. 아이폰의 와이파이를 검색하니 무료 와이파이가 잡힌다. 공항에서 제공되는 30분 무료 와이파이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페이스북에 들어간 순간 하늘이 무너지다 못해 미치고 팔짝 뛸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대변인 씨...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