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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쳐라 남미! -3-

반전, 아르헨티나 도착 그리고 역경의 시작

by 대변인

https://brunch.co.kr/@briefing/5


<전편에 이어...>


아이폰의 와이파이를 검색하니 무료 와이파이가 잡힌다. 공항에서 제공되는 30분 무료 와이파이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페이스북에 들어간 순간 하늘이 무너지다 못해 미치고 팔짝 뛸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대변인 씨... 어떡하나

어떡하나 ^^^ 난 지금 막 서울에 도착했는데...

내 일정과 겹쳤네 어쩌지...

뭔가 벽에 부딪쳤을 때 메일 보내세요.

적당한 사람들을 알려 줄게요.

정말 서운하네요.

난 지금 너무 어지러워 헤매고 있어요.

연락 주세요


프랑크푸르트에서 후두부를 강타했던 바로 그 메시지


메시지를 보낸 분은 예전 잠시 스페인어를 배웠던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다. 부모님 연배 분으로 젊었을 적 아르헨티나에서 약 30년 동안을 살다 오신 아르헨티나 이민 1세대(?)로 현재 자제분들은 모두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아르헨티나를 목적지로 정하게 된 것도 안 가본 미지의 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원장님은 아르헨티나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셨고 내가 아르헨티나에 도착하면 아르헨티나에서 사업하는 자제분들과 지인 분들을 소개해 주겠노라 말하셨다. 나도 일단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원장님이 소개해주시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천천히 발판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니 나도 좀 더 쉽게 남미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내가 믿던 구석이다. 그런데... 믿었던 최후의 보루가 돗대도 아닌 텅 빈 담뱃갑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에 연락을 하지 그랬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서울을 떠나기 전 몇 차례 원장님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아마도 아르헨티나가 현재 휴가 기간이니 아르헨티나 어딘가로 멀리 여행을 가셨거나 통화가 잘 안 되는 곳에 계시겠거니... 했는데... 그곳이 서울일 것이라고는... 아직 아르헨티나에 도착도 안 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갑자기 머리가 멍~해온다. 당황, 분노, 근심, 걱정, 쾌락, 환희... 감정이 짧은 순간 머리에서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 아트처럼 변하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 머릿속에서 사칙연산, 가감승제,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가 알파고보다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인생은 실전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믿을 것은 불알 두 짝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믿던 불알 한쪽이 떨어지고 남은 불알 한쪽도 너덜너덜해진, 말 그대로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다운로드.jpg 내가 고자라니! <출처: 미상>


썅!

메시지를 읽고 입에서 짧은 단말마가 나왔다. 회사는 이미 때려치웠고 나는 한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앉아있다. 지금 상황이 게임이라면 Ctrl+Alt+Del 키를 눌러서 리셋을 하던가 세이브된 곳에서부터 다시 진행하겠지만 인생엔 리셋이 없다.


그렇다. 정말로 인생은 실전이다. 이미 떠나온 거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고 광화문 광장에서 조선일보까지 108배를 한다고 해도 조선일보에서 다시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물론 다시 돌아갈 마음도 없다만...)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3시간이 마치 30시간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자 점차 탑승 게이트 앞에 사람이 북적인다. 아르헨티나에 독일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독일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를 이렇게 많이 갈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탑승을 기다리는 와중에 공항에서 안내방송을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루프트한자 ㅇㅇㅇ편은 전 좌석이 모두 예약되었습니다. 기내용 수화물은 1인당 한 개까지만 허용되오니 그 이상의 물품은 별도로 접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닥친 믿기 힘든 현실을 뒤로한 체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 좌석은 3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중 제일 창가 쪽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내 옆으로는 모두 겨냄새 짙은 남자들이었다. 덩치도 큰 친구들이라 화장실이라도 한번 가려면 익스큐즈미를 몇 번이나 외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출발 전 그런 걱정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에 빠져들어 기내식이 나오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시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앞으로 닥칠 현실을 거부하는 몸의 면역체계 거부 반응은 아니었을까?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좌석 앞에 모니터에서 그동안 생소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IMG_1906.JPG 하늘은 어디나 똑같다. 하지만 다른게 있다면
IMG_1908.JPG 지구 남반구 남미 상공에 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그렇다! 나는 지금 남반구에 위치한 남미대륙 위를 날고 있다. 비행하고 있는 위치를 보고 있자니 정말로 남미에 왔구나 생각이 든다.


잘하고있는걸까짓것한번겪어보면알겠지만정말잘하고있는걸까짓것한번겪어보면알겠지가만정말잘하고있는걸까짓것한번겪어보면알겠지...

가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다.




이때만 해도 일주일 후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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