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베이스캠프에 도착 똥밭을 걷는 수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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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공항에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어머니가 소개해준 손님의 자제분을 만나 공항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서 18,000km 계절은 정 반대인 나라 아르헨티나는 3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이었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후끈한 여름 공기가 열정의 대륙, 탱고의 나라, 남미의 파리,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티팬티, 마이크로 비키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열정적인 남미 여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들떠 서둘러 픽업 나온 자제분 차를 타고 미리 예약한 숙소가 있는 시내로 향했다.
나를 태워준 자제분은 한국에서 혈혈단신 넘어온 내가 신기하다는 듯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진짜 혼자 왔어요? 여기에 아는 친척이나 친구 있어요? 결혼했어요? 왜 왔어요?
예, 아니오, 아니오, 글쎄요 라는 나의 대답을 듣자 그분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진다.
열심히 찾아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힘내세요!
그분의 응원인지 체념의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로 향했다.
유럽에서 자주 봐왔던 유형의 건물들을 보면서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그리고 다 떨어지고 낡았지만 보수가 안되어있는 건물과 그 주변을 보면서 현재 아르헨티나가 처한 폭망의 기운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숙소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한인민박 '남미OO'이라는 한인민박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숙소는 무조건 외국인들 많이 찾는 곳 위주로 결정, 한인민박은 피한다.'라는 원칙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여행이 아닌 이민을 온지라 최대한 빨리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인민박에 첫 번째 둥지를 틀었다.
보통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비해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는 깨끗하다, 한국어가 통한다, 다양한 정보 교류가 가능하다, 한식을 먹을 수 있다, 동행을 구하기 쉽다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여태까지 겪어본 게스트 하우스 중 손에 꼽게 더러워서 나도 더럽게 하고 잘 다녔다. 화장실도 정말 거지 같아서 그곳에서 열심히 똥을 쌌다. 조식도 그냥 빵 몇 개 과일 조금이 준비해 놨길래 될 수 있는 한 많이 먹고 나왔다. 좋은 화장실에서 싸는 똥도 똥이고 나쁜 화장실에서 싸는 똥도 똥이다. 비싼 빵이든 싸구려 빵이든 어차피 먹으면 탄수화물이다. 그때는 이곳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낙천적으로만 생각을 했다.
대기 시간까지 꼬박 하루가 넘는 비행을 해서인지 몸에 힘이 없고 축 늘어진다. 사람들은 최근에서야 이러한 남자들의 모습을 '현자타임' 이라고 묘사하기 시작했다. 배정받은 방에 짐가방과 배낭을 풀고 '이곳이 내 이민 생활 시작의 전초기지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왜냐하면 시설, 환경, 위생, 친절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더 이상 고민해봤자 머리만 아플 것 같아 일단 한숨 눈 좀 부치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서 시내 관광이나 해야겠다...
그때는 이곳에서 한숨 눈 좀 부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정확히 7일 후 이곳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