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도 엄마 따라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시장 가는 길은 설렘으로 발걸음도 마음도 가볍고 좋은데, 돌아오는 길은 항상 뭔가 무거운 짐에 눌려 피곤함을 느낀다. ‘다음엔 엄마가 시장가실 때 따라가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여전히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백화점이나 큰 쇼핑센터가 편리해서 자주 이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일반 시장과 전통시장, 길거리 시장은 그 나름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있어 지금도 즐기는 편이다. 지난 설의 성묘길에도 우연히 발견한 시골 장터.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차에서 내렸다. 구경하며 이것저것 샀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는가? 호떡 하나 사 먹고 어묵도 하나 사 먹고. 길거리 음식이 위생적으로 좋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고 재미있다.
음식을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하듯 무엇을 만들 지간에 당연히 재료가 필요하다. 퀼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선생님이 나눠 주시는 원단을 사용하고, 부족한 것은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집까지 배달되어 편리하고 좋다. 그러나 화면상으로 보는 원단과 실제로 보는 원단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단과 여러 부자재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시장은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광장시장이 있다. 이 중에서 동대문 시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A동, B동, C동, D동, N(신관)이 있다.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각 동별로 약 5층정도이다. 이곳에는 정말로 다양한 원단과 부자재들로 가득하다. 구경하면서 ‘저것은 어디에 쓰는 것일까?’ ‘저것은 얼마일까?’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다 물어볼 수 없다. 물어봐도 대답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처음 시장에 갔을 때 원단이 예쁘고 질감이 궁금해서 만지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매는 안 합니다.”라고 쌀쌀맞은 말소리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이 상인 분들은 ‘척’ 보면 업체 사람이 아닌 것을 다 안단다. 어리버리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당연히 내가 업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이곳은 대량으로 원단을 구입해 가는 업체들을 상대하는 곳이기에 나 같은 사람은 그냥 귀찮은 존재이다. 그냥 지나가면 좋은 사람 아니 좁은 골목에서 괜히 골목을 더 좁게 만드는 불청객일 뿐이다. 새벽부터 시장에 나와 먼지 나는 원단과 씨름하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체력도 많이 달릴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그들을 이해한다.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동대문시장 지하에는 소매로 원단을 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단을 2마 정도 잘라 놓고 파는 곳, 지퍼, 가방끈, 단추, 실, 심지, 후크 등 원단과 부자재를 이곳에서 다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윗 층의 원단 상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물건은 없다. 어느 날, 동대문시장 지하에서 원피스를 만들 원단을 뒤적이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윗 층으로 올라가 봐야겠어요.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없네요."
“저도요. 그런데 윗 층에는 소매를 안 한다고 하던데요? ”
“아니에요. 소매하는 곳도 있어요. 다양한 원단이 있는 것은 아닌데, 자투리 원단을 파는 곳이 있어요.”
“그래요? 저도 거기 알고 싶은데 따라가도 될까요?”
“그럼요. 같이 가 봅시다.”
이렇게 자투리원단(전문용어로 ‘난단’)을 파는 곳을 알게 되었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참으로 쓸모 있다. 하하하. 그분을 따라 D동 2층으로 갔다. 계단 옆에 원단들이 쌓여 있었다. 그곳 말고도 2곳에서 자투리 원단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기분 좋았다. 이곳에서는 나를 푸대접하지 않았다. 이 원단 저 원단을 보여주며 권하기까지 한다. 동대문시장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원단을 구입했다. 이곳에서 또 어떤 아줌마와 말을 섞게 되어 1층의 새 원단가게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 가게에 손님으로 온 어떤 아줌마와 이야기 중에 신관 4층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비교적 다양한 원단들이 많이 있다. 다만 이곳 또한 공장에서 자투리로 남은 것들만 취급하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1마는 팔지 않지만 2마 이상은 살 수 있다. 가게 사장님이 기분 좋으면 공짜로 주시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자투리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물건이 항상 다르다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사야 한다. 운이 좋으면 정말 좋은 원단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꼭 들르는 곳이다. 그냥 친구 따라갔다가 필요한 원단이 없어도 친구가 사면 나도 사고,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사고, 색깔이 예뻐서 사고, 원단의 질감이 좋아서 사고, 가게 사장님이 권해서 사고. 이렇게 해서 집에 원단은 쌓여 간다.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손에 들려진 검은 봉지와 가방의 무게가 버거울 때 하는 생각은 ‘이러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심심하면 시장으로 발길이 간다. 혼자서도 가고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시장에서의 시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