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빛을 발하지 못한 노고

by 소연

동대문 시장 근처에 볼일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점심때가 되어 시간이 약간 애매하기는 했지만 잠깐 들러 후다닥 원단 구경만 하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하하하.

세상의 일이 어찌 계획대로만 되는가? 후다닥 구경만 구경만 하려 했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렸다. ‘정말 오늘은 구경만 해야지.’라고 결심을 했는데… 결국은.

쨍한 색깔이라 약간 고민했지만, 집에 늘어나는 원단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내 눈에 꽂힌 펀칭이 되어 있는 빨간 면 레이스 원단을 그냥 그 시장에 두고 올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구입한 원단을 보며 ‘너무 빨간가?’하는 생각을 했지만 좌우지간 ‘예쁘다’로 결론을 내렸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 배가 약간 고팠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내 머릿속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만들까?

치마는 잘 입게 되지 않는데, 바지와 재킷을 만들까? 와! 그건 아니네. 연예인도 아니고.

소매가 7부인 긴 원피스를 만들까? 그것도 너무 과하지.

그럼 민소매 긴 원피스를 만들까? 아! 그건 좀 괜찮을 것 같네. 연륜이 묻어나는 팔뚝살은 흰 짧은 재킷으로 가리면 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곧 딸이 체코 여행을 하러 간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핸드폰에 있는 AI에게 ”체코여행할 때 빨간 원피스를 입고 사진 찍으면 잘 어울리는 장소를 알려 줘. “라고 물었더니, 프라하성, 카를교, 구시가광장, 천문시계 등의 장소를 알려 주었다. 평소에는 좀 과해서 입기 어렵겠지만 여행지에선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옷에서 딸의 옷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왠지 딸에게 딱 필요한 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었다.


예전에 그려 두었던 딸 치수로 그린 패턴을 꺼냈다. 나는 원단에 따라 옷의 스타일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형을 그려 놓고 그것을 수정해서 새 패턴을 그려서 사용한다. 원피스는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윗부분은 허리 라인보다 살짝 올라가는 하이웨스트로, 예쁜 몸매가 드러나도 되니까 허리가 딱 맞도록 다트를 허리로 옮겨 패턴을 수정했다. 여밈은 뒷 지퍼로. 다행히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쟁여 두었던 지퍼들 속에서 딱 맞는 색은 아니지만 사 온 원단 보다 조금 진한 지퍼를 찾았다. 다행이다. 지퍼 하나 사러 갔다가 또 다른 원단을 더 사 올 뻔. 하하하.

대충 계획은 나왔다. 그렇지만 시접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안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안감을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시접처리가 달라진다. 안감을 넣으려 했더니 펀칭이 많이 되어 있는 원단이라 안감의 시접이 보여 거슬릴 것 같고, 집에 가지고 있는 빨간색 안감을 넣으면 너무 덥고 옷이 무거워질 것 같았다. 뚫려 있는 펀칭에 빨간색 안감과 흰색 안감을 대어 보았다. 흰색 안감과 더 잘 어울렸다. 집에 있는 안감들은 대부분 다후다 합성섬유로 여름철에 적합하지 않은 원단들이다. 아무래도 시원한 소재의 인견으로 짧은 속치마를 만들어 원피스 안에 입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시접은 바이어스로 처리해야 한다. 제 원단을 바이어스로 하면 좋은데, 펀칭이 되어있는 톡톡한 면이므로 너무 두꺼워질 것 같았다. 딱 어울리는 색깔의 바이어스를 사러 갈 수도 없고, 그냥 또 뒤적이다 안감으로 찾아 두었던 빨간 안감을 바이어스로 잘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구상은 다 끝났다.


원단을 펴고 치마 부분을 재단했다. 그다음은 윗부분을 재단했다. 먼저 상체의 허리 다트를 박았다. 다림질로 꾹꾹 눌러주었다. 그다음은 어깨선 박고 시접을 바이어스로 마감했다. 상체 부분의 옆 선을 박고 시접을 처리했다. 오버록으로 처리를 하면 편하지만 빨간색 실이 3개 필요할 뿐 아니라, 펀칭되어 있는 곳으로 실이 보여 바이어스로 결정한 것이지만 시접처리가 많이 힘들었다. 더 고품질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장비가 더 더 필요하다. 하지만 업이 아닌 취미생활이므로 장비를 더 늘리는 것은 무리다. 이 정도 수준에서 멈춰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다음에는 팔 둘레 부분을 바이어스로 마감했다. 다음 단계는 허리길이에 맞게 치마에 주름을 잡아야 한다. 중심에서부터 주름을 만들어 가다가 지퍼 부분에서 오차를 조절했다. 상체 부분과 주름을 잡은 치마 부분을 이었다. 또 시접을 바이어스로 처리하고 위로 올리고 상침 했다. 힘들었다. 그다음은 지퍼를 달 부분에 심지를 붙이고, 콘솔 지퍼를 달았다. 그다음은 지퍼 부분의 시접처리를 했다. 좀 지쳤다. 다음에는 빨간색 실을 다른 3개의 실패에 감아서 펀칭 부분으로 오버록 한 부분이 보이거나 말거나 드르륵 오버록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옷이었다면 아마도 중간에 오버록 처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좀 힘에 부쳤다. 마지막으로 목 부분을 바이어스로 마감했다. 일단 완성이다.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내 옷을 만들 때는 중간중간 입어 보면서 만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잘 맞는다. 그런데 식구들의 옷을 만들 때는 입혀 보지 않고 치수에 의존해서 만들다 보니 만족도가 떨어진다. 완성된 옷을 입어봤다. 들어가긴 한다. 지퍼를 열어 놓은 채로. 크크크.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지퍼를 열어 둔 상태이긴 하지만 내 몸에 어느 정도 맞는다. 이건 아닌데… 불안한 마음으로 완성된 옷과 딸의 치수를 비교했다. 허걱! 이를 어쩌나! 기본형으로 그려 두었던 패턴은 셔츠 만들 때의 기본형이었다. 즉 여유분을 많이 준패턴이었다. 고민하다가 소매 부분을 뜯었다. 실측한 치수보다 조금만 여유를 두고 곡자를 꺼내 원단에 그리고 오렸다. 다시 박고 시접처리를 했다. 다시 입어봤다. 그전보다 품이 많이 줄었다. 딸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흐뭇했다.


다음은 시원하고 얇은 흰색 인견 원단을 찾아 덥지 않게 여유 있는 품으로 상, 하를 나누어 재단하고 박고 시접처리를 했다 시접은 모두 말아 박기를 했다. 뱃놀이라는 것을 이용하면 곡선 부분도 늘어나지 않고 예쁘게 말아 박기를 할 수 있다. 속치마 밑단은 속치마가 보여도 레이어드 한 것처럼 보이도록 면 레이스를 붙였다. 예뻤다. 잘 만들어졌다. 완성된 속치마와 민소매 원피스는 조물조물 잘 빨아 린스도 해서 빨래걸이에 널었다. 다 마른 후 정성껏 다림질을 했다.


바쁜 딸을 위해 여름에 덮을 작은 사이즈의 시어서커 원단으로 만든 홑이불과 함께 사무실로 가져다주었다. 너무 바빠 보여서 “여행 갈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었어.”라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왔다. 기분이 좋았다. 그날 저녁 나도 모르게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혹시 카톡으로 착장 모습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보내려나? 하는 마음이었다. 아마도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 밤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다음 날에도 소식이 없었다. 어차피 만들어 달라고 부탁 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내 기분에 내 마음대로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맘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잘 맞는지, 마음에 드는지. 그렇지만 전화나 카톡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쁜 걸 알고 있었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서다. ‘바쁜가 보구나. 여유가 없나 보네.’ 오히려 짠한 생각이었다. 카톡이 왔다. 사이즈는 잘 맞았지만, 색이 너무 과해서 못 입을 거 같다고. 그랬구나. 색이 과했어. 일단 원단이 좋은 거니까, 내 사이즈에 맞게 리폼해서 입을 거니까 담에 만날 때 주라고 했다. 비록 2일 동안의 노고가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많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사이즈는 잘 맞았다니 그것으로 괜찮다.

이번에도 Good enoug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