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을 버리다.

by 소연

오늘에서야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아깝다고 나의 수고가 아깝다고 가지고 있던 검은색 코트를 들고 드디어 의류 재활용함을 향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9년 정도 되었나? 모르겠다. 동대문시장에서 프라다 원단과 검은색 털(fur) 원단을 샀다. 긴 코트를 만들 생각으로 산 원단들이다. 항상 그렇듯이 원단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의 나의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어떻게 만들까?'

‘칼라의 스타일은 무엇으로 할까?'

‘길이는 어느 정도로 할까?’

‘주머니는 어떤 것으로 할까?'

‘단추는 일반단추로 할까? 아니면 스냅단추로 할까?'


집에 도착한 나는 생각만큼 몸도 바빠진다.

그때는 작업을 위한 나만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거실에 원단을 펼쳐놓고 오리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마름질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마름질하고 난 후에는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팠다. 털원단을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그때는 몰랐다. 털원단의 선택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에 그려두었던 패턴을 골라 거실로 갔다. 먼저 검은색 프라다 원단을 펼쳐 반으로 접었다. 당연히 쪼그리고 오리걸음으로 돌아다니며. 그 위에 뒤판의 패턴을 올려놓고 쵸크로 시접을 1.5cm 두고 그렸다. 그다음 앞판을 그렸다. 소매 2장을 그리고, 주머니 앞과 뒤 2세트를 그렸다. 라운드 칼라로 정했기 때문에 칼라는 그리지 않아서 편했다. “아이고~ 아고고~” 소리를 내며 일어서서 흰색 쵸크로 패턴이 얌전히 그려진 검은색 원단을 바라보았다. 벌써 다 만든 것처럼 흐뭇했다.

다시 쪼그리고 앉아서 가위를 들고 오려 나갔다. 다 오렸다. 겉과 안을 잘 표시했다. 겉과 안을 표시하지 않아서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겉과 안의 구별이 잘 되는 원단에도 꼭 표시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픈 다리를 조심스레 펴면서 오려놓은 원단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뒤판과 앞판을 몸에다 댔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오드리헵번의 A 라인 코트로 정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착 떨어지면서 골이 생기는 게 만족스러웠다. 길이는 종아리 중간정도로 했다. 소매는 소매부리가 조금 넓은 스타일로 정했는데, 이것 역시 좋아 보였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그다음은?

털원단을 마름질하는 순서다. 털원단의 안쪽면이 보이게 반으로 접어 뒤판, 앞판, 소매를 검정 프라다원단과 마찬가지로 패턴을 대고 그렸다. 이 시점에서 “에고에고~”소리를 한번 내고 일어서서 잘 그려졌는지 확인했다. 역시 만족스러웠다. 얼른 만들고 싶은 마음에 재빠르게 가위를 들었다.

‘털원단이라 잘 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가위질을 시작했다.

“사각사각사각”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가위질이 잘 되었다.


그런데, 짜자잔~.

다 오려진 패턴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난리 난리 난리가 났다. 잘라진 털들이 대책 없이 날렸다. 청소기를 가져오고 찍찍이를 가져와서 털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털들이 정리되었다 생각하고 자리를 옮기려 하는데, TV와 장식장 소파에도 털들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이거 장난이 아니군. 이를 어쩌지? 휴~!’

가족들이 집에 오기 전에 온 힘을 다해 깨끗이 치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이 더 바빠졌다. 일단 오려놓은 원단들을 정리했다. 오려놓은 원단의 털들이 다 떨어지도록 손으로 쓸어내렸다. 생각보다 많은 털들이 쏟아졌고 정전기까지 발생해서 손에도 얼굴에도 입고 있는 옷에도 검은 흔적들이 달라붙었다.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포기하고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청소기로 다시 빨아들이고, 찍찍이로 묻혀냈다.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닦고, 걸레를 빨아 여러 번 닦아낸 결과 어렵게 털과의 전쟁이 수습되었다.

그 후에도 마치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는 무서워서 숨어있던 병사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슬금슬금 나와보는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검은색 털의 흔적이 보였다. 이것은 여러 날 지속되었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드디어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옷(reversibie coat)이 탄생했다.

이 옷의 실루엣과 길이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쌀쌀한 날, 이 옷을 털이 있는 쪽으로 입고 외출했다. ‘좀 과한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라운드 칼라이기 때문에 같은 원단으로 목도리까지 두르고 나갔다. 그런데 조금 추웠다. 털원단이라 따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양면으로 입을 생각하지 말고 패딩 안감을 넣었어야 했나?'

이 코트는 아주 추운 날은 못 입고, 적당히 쌀쌀한 날에 입어야 했다. 털이 털 값을 못한 것 같다.

또 하나의 단점이 발견되었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밑이 퍼지는 A라인 실루엣이라 원단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옷이 무거웠다. 그런 2가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착이 가는 옷이었기에 일 년에 두어 번 입으며 잘 간직해 오던 옷이 오늘 의류 재활용함으로 갔다. 입으면서 ‘무겁다!'라는 생각을 매번 했지만, 이번엔 유난히 무거워서 힘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작년보다 몸이 힘든가 보다’라는 서글픈 생각을 했다.

‘옷'과 ‘나'중에 주인공은?

정답은 당연히 나.

'앞으로 이 옷을 입으면 더 힘들게 느낄 거야.'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은 물건에 대한 집착이지.'

'그래. 미련을 버리자.'

힘든 전쟁을 치르고 얻은 옷이기에 더 애정이 갔나 보다.


안녕, 잘 가. 너를 만날 때 힘든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더 소중했어. 자주 애용해주지 못했지만, 가끔 너를 입고 기분전환 했어. 잘 가. 이제와 생각하니 ‘너의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둘 걸‘하는 아쉬움이 남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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