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꼭 챙겨주고 싶은 삶의 준비물, 호기심
슬슬 잠자리를 준비하는 일요일 저녁, 아직 세 돌이 안된 아이를 품에 안고 즐거웠던 주말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ㅇㅇ아, 엄마 아빠랑 주말 재밌었어?"
"응"
"아빠도 너무 행복했어. 근데 내일부터는 아빠 다시 출근해야 해~"
"히잉, 왜?"
아이가 세상 시무룩한 얼굴로 묻는다. 한두 달 전 까지만 해도 아빠 간다고 하면 마냥 울기만 하던 아가였는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내일이 월요일이라 회사에 가야 한다는 어설픈 설명으로 아이를 달랬고,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듯 내 어깨 위에 얼굴을 폭 떨구며 "안녕~" 하고 아쉬움이 담긴 인사를 미리 건넸다.
"왜?"
또래보다 조금 늦게 말을 트기 시작한 아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하루 동안 마주치는 갖가지 사물과 상황에 쉴 새 없이 따라붙는 아이의 질문에 부모로서 나름 성실하게 대답해주려고 애쓰는 중이다.
어른의 기준에 전혀 궁금할 게 없는 상황에서 질문을 받으면 순간 뇌가 멈추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의 눈높이를 가늠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보다가도 '좀 어렵지? ㅇㅇ이가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라던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어' 같은 치트키로 어설프게 대화를 마무리할 때도 있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에 수시로 생겨나는 물음표들을 그때그때 부지런히 지워주는 일이 생각보다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문장으로 정확한 지식을 채워주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내 생각에 더 중요한 건 아이가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한다.
아이의 성격은 나를 많이 닮았다. 조심성이 많아 새로운 시도에 소극적이다. 살면서 이런 성향이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누리는 데에 그것은 분명 걸림돌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것도, 욕심나는 일도 잘 없었다. 누가 시키는 일은 성실하게 곧 잘 해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는 방법을 몰랐다. 내장 배터리가 없는 느낌이랄까. 전선이 빠지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버리는 가전제품 같았다. 아마도 그때 나에게 필요한 연료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주는 삶의 활력이 얼마나 큰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호기심은 언젠가 혼자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꼭 챙겨주고 싶은 삶의 준비물이다.
어차피 모르는 게 없는 부모가 될 수는 없다. 지식에 대한 아이의 욕구를 더 이상 채워줄 수 없는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에 맞장구 쳐주고 함께 고민하는 부모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어른으로 살아야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항상 흥미로운 대화의 상대로 여겨주길 바란다.
퇴근 후 아이와 블록놀이를 하는데, 내가 만든 자동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이가 묻는다.
"이거, 왜?"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오늘도 이 귀엽고 철학적인 질문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 아들아, 아빠가 너의 "왜"를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