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들의 변기 거부
나는 변기 무서워
큰 일을 볼 때만 채워주던 기저귀가 어제부로 동이 났다. 없으면 별 수 없이 변기에 앉겠지 싶었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기저귀가 없다고 했더니 이 녀석이 이틀 째 큰 일을 참는 중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힘든지 발을 동동거리기도 하고, 괜히 엄마를 찾기도 한다.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리는 것 같은데...
"여보, 똥 참다가 쓰러지거나 하는 경우는 없지...?"
아내에게 물었다가 괜히 겁나는 소리 하지 말라며 핀잔만 들었다. 큰 일 참느라 지친 아들은 하체의 긴장이 풀릴까 봐 상반신만 소파에 걸친 채 졸고 있다. 진짜 말 그대로 똥고집이네... 소변은 잘하면서 대체 왜 큰 건 안 되는 거니?
아내와 나 역시 쉽게 물러서지 못하고 묵묵하게 변기를 권했다. 아이가 '버텼더니 원하는 대로 되더라'라는 게 학습이 되면 올해 안에 기저귀 떼는 건 물 건너 가버릴지도 모른다. 내년에 유치원에 보내려면 기저귀를 얼른 떼야만 한다.
하지만 저 모양으로 30분 넘게 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학대하는 줄 알겠어... 우리도 얘가 이 정도로 고집을 부릴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린이집에 연락을 드렸다. 코로나로 가정보육 중이긴 하지만 지금껏 배변훈련을 위해 함께 템포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변기에 대한 거부가 생각보다 심한데, 좀 더 설득을 해봐야 할지 아니면 그냥 기저귀를 채워주는 게 좋을지 여쭸고, 선생님은 더 심한 거부가 생길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자는 조언을 해주셨다.
아내는 통화를 마친 뒤 가방 어딘가에 짱 박혀 있던 기저귀 한 장을 찾아와 아이를 깨웠다.
"ㅇㅇ아, 기저귀 찾았어! 일어나 봐!"
"기저귀 있쪄?! 우와!!"
자다 깨서 벌건 얼굴로 박수까지 치며 환호하는 아들. 기저귀를 채워주니 늘 하던 대로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힘을 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내가 애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린 이쯤에서 돌이킨 게 다행인 것 같다며 서로를 위로했고, 이제는 볼일이 없을 줄 알았던 기저귀를 결국 한 상자 더 주문했다. 아들에게는 네가 그 정도로 싫어할 줄 몰랐다며 천천히 같이 잘해보자고 설명했는데, 부모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그저 기저귀를 샀다는 얘기에 싱글벙글이다.
평소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관을 신뢰한다. 애 키우다가 고민이 있을 땐 검색창에 오은영 박사님의 이름을 같이 끼워 넣어 답을 찾아보곤 했다. '손톱 뜯는 아이 오은영', '밥 안 먹는 아이 오은영' 같은 식이다. 글로 쓰고 보니 대한민국의 모든 오은영 어린이에게 왠지 미안해지네. 아무튼 이번에도 역시 오박사 님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박사 님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 우리와 비슷한 사연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가 일찍 잠이 든 날, 아내와 함께 작은 방에 들어가 영상을 틀었다.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단점은 항상 너무 몰입이 돼서 실시간으로 육아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는 거다. 사연 부모와 아이의 성향이 우리집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대변을 볼 때면 변기를 거부하고, 그렇게 3, 4일 참다가 배가 아프다며 울면서 바닥을 뒹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계속 변기를 고집했다면 비슷한 상황이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에서 오박사 님이 부모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이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아이의 엄마, 아빠는 나름의 생각을 얘기했다.
"고집이 세서 그런 것 같아요."
"집중력이 좀 떨어져서 변기에 못 앉아있는 게 아닌가..."
오박사 님은 고집이 세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대부분의 일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이 아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변화에 큰 저항이 있고, 특별히 촉감이 예민한 성향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문화센터에 다닐 때 촉감놀이는 질색을 하고, 맨날 먹는 반찬만 먹고, 카시트 바꿨더니 싫다고 거부하던 평소 우리 아이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솔루션으로는 아이가 배변 상황에서 스스로 '안전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고, 그 방법으로 일단은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배변을 해보면서 '변의-배변-자기효능감'이라는 연결된 경험을 먼저 가져볼 것을 제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고, 집이 아닌 외부 화장실에서도 변을 볼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
매번 느끼는 건, 대부분의 육아 문제의 해결은 부모의 인식 변화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훈련사 강형욱 님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항상 개가 아닌 견주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내 아이의 육아에는 도대체 왜 적용이 안 되는 것인지. 우리 역시 아이가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고, 그저 한 번 해봐라 별 것 아니다, 변기를 못쓰면 나중에 유치원에 못 간다 같은 말로 아이 마음에 부담만 주고 있었다.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조바심 내던 아내와 나의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와 변기에 스티커를 붙이며 친해지기를 먼저 시도했고, 사탕이나 초콜릿을 작은 보상으로 걸고 변의를 느낄 때마다 변기에 한 번씩 앉아만 보는 걸 작은 미션으로 정했다. 아이가 화장실 변기에 앉는 횟수가 조금씩 늘었고, 적어도 소변은 거실에 있는 간이 변기가 아닌 화장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대변볼 땐 여전히 기저귀를 찾지만, 변기라면 질색을 하던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조만간 화장실 변기에서 대변을 보는 감격의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그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케익을 사서 파티해야지.
내 새끼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이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항상 겸손하고 섬세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