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글을 오래 쓰는 편이다. 최소 일주일 정도는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최근 브런치나 SNS에 올리고 있는 이상한(?) 글들도 모두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쓴 것들이다. 물론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덩어리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주어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 연비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안 좋은 습관인데, 글을 단숨에 써내려가지 못한다. 지나온 문장을 여러 번 읽는다. 잘 쓰고 싶어서다. 내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이란 관념적이지 않은, 진짜 내 삶이 담긴 글이다. 그런 글이라면 깊은 농도의 진심이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다. 특히 나는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주 소재로 삼곤 하는데, 누가 “너 그런 글을 썼다며?“라고 물어도 당당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고 항상 노력한다.
오래 고민하며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심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면에서 좋긴 하지만, 문제는 그 진심이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불일듯한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써내려가다가도, 정신없는 일상을 며칠 보내고 쓰던 글을 다시 열었을 땐 그 감정이 많이 사그라들어 이것이 정말 내 생각이었는지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땐 다시 찾아오지 않을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에 아쉽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왕복 40분 정도 되는 출퇴근 버스 안에서 글을 써보는 것이다. 가방에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 눈을 감거나 창밖을 보면서 글을 쓴다.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책상 앞에서 각을 잡고 쓸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지금은 집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80% 정도는 통근버스에서 썼다는 사실이 꽤나 만족스럽다.
그동안은 너무 조심스러웠나 싶다. 과연 한 개인에게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심이라는 게 얼마나 있을까. 사진 속의 어떤 날이 오늘 존재할 수 없는 게 당연하듯이, 어제의 내 진심도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걸지도. 이제는 하루치의 생각과 감정을 그날이 지나기 전에 기록하는 연습을 더 자주 해보려고 한다. 좋은 풍경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드는 것처럼 쉬운 마음으로. 그렇게 내 진심에 가볍게 닿아보는 일이 삶 속에서 더 잦아지길 바란다.
“글쓰기는 어느 한 시절을 수집하는 일이다. 그 시절의 감정과 감각을 잊지 않고 지켜내는 일이다.”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