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현 Apr 05. 2022

포스트 워라밸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순 없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게 훨씬 쉽더라.”


     제가 직장생활 3년 차 정도에 접어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입니다. 왠지 무력한 이야기 같기도 했지만, 어쩌면 행복한 삶을 사는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원하는 학업을 포기하셨고, 평생 트럭 운전을 하며 일구어 내신 평범하지만 분명한 행복으로 어떤 이에게는 그런 인생도 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셨죠.


     “가슴이 뛰는 일을 하세요!”


     그래서인지 TV프로나 강연, 동기부여 유튜브 같은 데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이 말이 저에겐 썩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살면서 아주 낮은 확률로 만나게 되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믿었지요. 하고 있는 일에서 꿈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아버지의 말을 되뇌며 책임이라는 단어로 그 자리를 바쁘게 메우곤 했습니다.



     직장에 워라밸이라는 주제가 밀려들기 시작한 게 3, 4년 전 즈음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워라밸이 꽤 괜찮은 직장생활을 누렸어요. 덕분에 육아에 깊이 동참하면서 가정의 뿌리를 다졌고, 삶에 활력을 더해줄 몇 가지 취미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일과 삶을 분리하고, 퇴근 후의 시간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분명히 전보다 나은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허전하네요. 저는 지금의 시대가 말하고 있는 시간의 정량적인 배분을 기준으로 한 워라밸의 개념에서 일종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적인 여유 덕분에 '라이프'의 영역을 행복하게 꾸려내는 나름의 방법은 터득했지만, 마찬가지로 제 일상의 소중한 일부인 '워크' 영역에서의 행복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과 삶은 꼭 분리되어야 하는 걸까요?


     일이란 그저 수고스러운 노동이자 퇴근 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걸까요?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는 상사의 칭찬, 과제의 완수에서 얻는 간헐적인 성취감 같은 것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요? 가슴 뛰는 일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건 정말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일인 걸까요? 우리는 삶에서 일을 어떤 존재로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요?


     워라밸이 저에게 만들어 준 시간과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에 대한 대한 더 많은 사유와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카카오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난 기업인이자 크리에이티브디렉터인 조수용 님이 이야기한 직업에 대한 정의를 옮겨보았습니다.


     “물론 돈도 벌어야 하지만 제 생각에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효용의 관점에서 직업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세운 룰에 따라 직업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존재의 의미가 뚜렷해질수록 돈도 잘 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워라밸,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말을 저는 좀 이상하게 보는데요. 일과 삶이 일치한다면 밸런스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는 거니까요. 자신의 정체성이 일을 통해 뚜렷해진다면 의외로 돈을 버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 매거진 <B> 단행본 「JOBS - EDITOR」 인터뷰 중


     틀린 말 같진 않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습니다. 일과 삶이 분리되어 양 끝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라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더 나아가 일치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요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소 거창하게 느껴지는 '가슴 뛰는 꿈', '삶의 이유', '나의 정체성'과 같은 말들을 뜬구름 잡는 이상이 아닌 현실로 이해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세 번째 CEO로 발탁된 인도 이민자 출신의 엔지니어 사티아 나델라는 혁신의 영혼을 잃고 침몰해가던 MS를 부활시킨 주역으로 평가 받습니다. 회사는 그의 취임 이후 PC와 윈도우 중심의 사업에서 탈피해 클라우드 서비스 중심으로의 전환에 성공했고, 마인크래프트, 링크드인, 깃허브, 블리자드 등과 같은 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하며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데요.


     10년 넘게 주당 30달러 대를 넘지 못하던 MS의 주가는 나델라의 취임 후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2018년에는 140달러를 넘어서며 16년 만에 시가 총액 1위를 탈환했고, 2021년에는 애플에 이어 두번째로 시총 2조달러 클럽에 입성하기도 했지요.


     이런 성공적인 재기의 배경에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와 그 곳에 소속된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나델라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글을 옮겨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CEO라는 새로운 역할 속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조직에서 모든 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었다. 내가 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과거의 실수가 계속되고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정직하지 못한 조직이 될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사회든 스스로 새로고침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오면 다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마음으로 목표를 재설정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사티아 나델라의 책 「히트 리프레시」 중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직업과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워라밸이라는 사회적인 아젠다에 휩쓸려 일과 직장의 가치가 폄훼 되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우리에게 제시한 일과 삶의 분리와 균형으로서의 워라밸을 충분히 경험한 지금, 저는 그 다음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고침의 순간'에 서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일과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짧은 질문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 생각은 없어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