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이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른 부서 직원 한 명이 퇴사 인사를 돌고 있다. 요즘 사무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올해만 벌써 몇 명이지? 잘 나가는 에너지 회사로 이직한다고 했다.
"오- 축하해요! 저도 감사했어요."
이럴 땐 내 진심보다 조금 더 오버해야 못난 속마음이 티가 안 난다. 먼저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축하해주는 취준생의 기분이랄까. 아니면 지인의 주식 대박 소식을 들은 월급쟁이의 마음이랄까.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은 매번 어색하다.
요즘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기차 뉴스를 쏟아낸다. 며칠 전에는 모 대선주자가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단다. 유럽은 5년 정도 더 빠르다. 우리나라도 더 빨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면... 내가 8년째 몸담고 있는 이 직장이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당장 몇 년 안에 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본격적인 내리막에 접어들었다는 건 모든 직원들이 알고 있다. 다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유망한 신사업이 수주되길 바라거나, 각자 나름의 먹고살 길을 찾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료의 이직 소식에 순도 100%의 축하를 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다.
옥상에서 선배와 커피를 마시다 자연스럽게 이직 얘기로 흐른다. 누군 어디 간다더라, 연봉이 얼마라더라 어쩌고저쩌고... 선배가 "넌 왜 이직 생각을 안 해?" 하고 묻는다. 나는 "글쎄요, 욕심이 잘 안 나네요."라고 쿨하게 답했지만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미지근한 속마음이 자꾸만 따라붙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라고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일과 사람 관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3년 차 무렵부터 왠지 모를 뒤숭숭함과 권태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들 겪는 일이라는 말은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토익 시험을 한 번 봤고, 채용 포탈을 뒤적거려보기도 했다. 근데 그게 다였다. 더 구체적인 계획을 고민을 할 때마다 자꾸만 내 뒤를 당기는 질문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옮기면, 이 고민이 해결될까?
새해가 되면 직장인 두 명 중 한 명은 이직을 계획한다고 한다. 조금 더 나은 보상, 워라밸, 인간관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이유는 제 각각이다. 그런데 이 중에 내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는 없었다. 그럼 지금 직장에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분명 마음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이 무기력과 결핍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직이 아니라면 난 뭘 해야 하는 걸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보다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럭저럭 지내는 요령만 점점 늘어가는 걸 느낀다.
"회사에 다닐 수록 할 줄 아는 게 없어지는 것 같아."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지인이 내뱉던 그 뜻 모를 푸념을 이제 나도 온 삶으로 이해해가는 중이었다.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에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앞서 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인데, 가보기 전엔 거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이 알 수 없는 결핍과 권태에 이직은 답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질문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막연한 마음 말고,
'거기'에 꼭 가야만 하는 나만의 이유가 있는가?
책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의 저자 박정열 님은 두 가지 종류의 이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변화시키는 이직과, 나를 변질시키는 이직. 외적 욕구에만 치우친 결정은 나의 본질과 정체성을 훼손시킬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변질이 아니라 내적 욕구에 기반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직 내 안의 것들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 책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박정열 저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면 나의 본질과 정체성은 뭘까?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지 궁금하다.